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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B-52 전략폭격기 vs 평화협정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한지 나흘만인 10일, 미국은 예상보다 일찌감치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출동으로 무력시위에 나섰다. 우리 군이 지난 8일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로 첫 대응조치를 취한데 이은 두 번째 한·미연합 전술 카드다.

 

  이날따라 북한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논평기사로 마치 18번 애창곡 같은 ‘평화협정 체결’ 촉구로 속내를 드러냈다. 평화협정은 북한의 숙원이자 핵무장의 역설적인 핑계다. 북한으로서는 4차 핵실험이 강도 높은 평화협정 체결 압박 카드인 셈이다. 


 핵미사일로 무장한 미군 B-52 폭격기는 ‘하늘을 나는 요새’라는 별명을 지녔을 만큼 위협적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13~14배 위력을 지닌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미국의 전략무기 가운데 하나다. 그만큼 B-52는 북한이 두려워하는 무기다.

 

  이 전략폭격기의 출동 사실을 한·미 두 나라가 공개한 것은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두 나라는 B-52 폭격기가 출동하는 연합훈련을 정례적으로 실시하면서도 동원 사실을 직접 공개하지 않는 게 관례다.
                                                                                                

 

 북한은 B-52의 한반도 출동 카드도 이미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B-52가 한반도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인 이날 아침에 발행된 노동신문은 “한해에도 몇 차례씩 전략 핵폭격기들이 미국 본토나 괌으로부터 무착륙 비행으로 곧장 조선반도 상공에 진입하여 핵폭탄을 투하하는 연습을 벌리고 있다”고 미국을 비난했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한·미의 압박은 시작에 불과하다. 북한은 남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미국의 B-52 무력시위에도 일단 소극적인 방어 자세를 취하는 모양새다. 대신 말싸움과 더불어 평화협정 체결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신문은 10일 논평기사에서 “우리더러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전에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은 강도적 주장”이라면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긴장 격화의 발생근원인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종식이 확인되면 미국의 우려사항을 포함한 그밖의 모든 문제들은 순간에 해결될 수 있다”고 받아쳤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미국이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도 평화협정 논의를 촉구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 회피의 후과를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위협한 바 있다. 북한이 지난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방북을 추진한 것도 평화협정 체결에 많은 것을 걸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태도는 한결같이 ‘전략적 인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에 앞서 비핵화의 핵심 문제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황준국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 역시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는 마차를 말 앞에 놓는 격이어서 결국 말이 앞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선후전도(先後顚倒) 상황을 비유했다.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북한과 미국의 입장은 절대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느껴진다. 협상의 멍석을 깔아주지 않는다는 불만과 멍석을 깔도록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고집은 어느 쪽도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북한이 지난해부터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를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보냈으나 미국과 한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B-52 출격은 북한 핵실험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조치라고 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마땅찮지만, 임기응변적인 대증요법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북한을 자극할 수는 있어도 핵무장을 막는 근본처방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긴장을 높여갈지 알 수 없다. 국제사회의 제재 카드도 약발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걸 북한은 꿰뚫고 있다. ‘전략적 인내’보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 여기서 ‘전략적 접근’은 중국의 협력과 압박을 포함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