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낙마한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무신불립’(無信不立)의 뜻을 몰라 쩔쩔매던 모습은 박근혜 정부의 현주소를 간접적으로 상징하는 듯하다. 배석한 교육부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답변하자, 한 국회의원은 “무신불립의 뜻까지 직원들로부터 답을 얻어야 하느냐”고 힐난했다. 직역하면 ‘믿음이 없으면 설수 없다’는 의미인 이 말은 ‘논어’ 가운데서도 유명한 구절이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제자 자공의 물음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며,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이에 자공이 그 가운데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냐고 하자 공자는 군대라 했고, 또 하나를 버린다면 뭐냐고 묻자 식량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공자는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며 ‘무신불립’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현 정부 들어 거짓말, 조작, 말 바꾸기, 호도(糊塗), 진실 숨기기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워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신문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 고교생 10명 가운데 7명이 “정부를 못 믿겠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이 이를 명증한다.
18대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심리전단의 여론 조작 댓글 사건을 대북심리전으로 호도한 것은 전초전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에 맞불을 놓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거짓말로 1년 넘게 공방을 벌이며 소중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 취임 초반을 허송세월한 죄과는 무엇으로도 만회하기 힘들다.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의혹 사건은 국가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의 하나다. 독재정권 아래서 수많은 간첩만들기가 민주정부 이후 무죄선고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본 국민은 과거의 악행이 온존한다는 데 배신감을 느껴야만 했다. 현직 서울시의원의 재력가 청부살해의혹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경찰의 거짓말과 제식구 감싸기는 무더위를 능가하는 짜증을 불러왔다. 이 밖에도 검찰과 경찰에서 진실이 뒤바뀌는 일이 다반사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총리는 “진실이 바지를 입기도 전에 거짓은 지구를 반바퀴 돈다”고 경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브리핑 사진 자료>
세월호 참사 때 절정에 다다른다. 생때같은 젊은 목숨이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고 있다가 수장(水葬)된 일은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 후 100일이 넘는 세월동안 정부와 집권당이 보여준 행태는 필설로 표현하기엔 태부족하다.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의 변사체 발견과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경찰과 검찰의 무능과 거짓말은 유언비어와 괴담, 음모론의 창궐을 낳았고 날이 갈수록 확대재생산된다. 참사의 정부 책임을 가리고 유병언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워 보려던 전략은 제 발등찍기가 되고 말았다.
‘변사체는 유병언이 틀림없으나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발표가 온갖 불신을 잠재우기는커녕 외려 의혹만 키운다. 이례적인 국과수 원장의 발표조차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지난날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때 국과수 감정이 오류를 낳은 전례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의혹은 영원히 규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누군가 교묘하게 짜맞추었을 것이란 음모론이 득세하는 걸 막기도 버겁다. 기득권층에서 유병언의 로비를 받지 않은 사람이 많아 살려두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음모론도 그럴듯한 논거와 더불어 퍼져나간다.
<젊은 시절부터 무신불립 정신을 길러왔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 모든 게 정부를 믿지 못하는 산물이다. 경찰과 검찰도 세월호 침몰 ‘골든타임’을 놓친 해경처럼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풍자까지 등장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벌써부터 이 중대한 미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와 소설이 머지않아 탄생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특별법은커녕 진상조사위원회도 제대로 못 꾸리자 세월호 이후 변한 게 없다는 질책만 무성하다. 집권당 대표는 수사기관 책임만 강조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불신사회의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호소하려 들 것이다. 음모론은 언제나 불신을 먹고 자란다. 불투명한 국정운영이 낳은 결과라는 점을 자인하지 않는 한 불신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대한민국이다.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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