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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물타기’란 이름의 마약

 권력은 궁지에 몰리는 사건이 터지면 으레 물타기수법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한다.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가 브레이크도 없이 질주하듯 ‘물타기’는 권력게임에서 제어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물타기 전략은 습관성을 지닌 마약 같다. 손쉽고 효험이 큰 묘약이 될 것이라는 계산 때문에 잘 떨쳐버리지 못한다.


  사안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물타기 수법은 틈새를 파고든다. 시간이 흘러 대중이 피로감을 느낄 것이라고 여길 무렵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악역을 자임해 권력의 눈에 들려는 용사가 여론의 화살을 감수하면서 맑은 물에 흙탕물을 뿌린다. 고급 정보를 쥔 검찰, 국가정보원, 경찰, 국세청 같은 핵심권력기관도 적시안타를 한두 개씩 때려준다. 여기에다 권력에 우호적인 언론매체가 시누이처럼 거든다. 필요하면 관변어용단체들까지 나서 상처를 덧내는 소문을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퍼뜨린다. 반대세력이 호두알처럼 단단하면 이간질도 곁들인다.

                                                                                           

                                                               <노란 리본을 단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참사도 예외가 아니다. 마지못해 잘못을 인정하고 눈물까지 보인 권력은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려는 작전을 꾸민다. 두 달 가까이 추적하던 유병언이 사체로 발견돼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자 본격적인 물타기에 돌입한다.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라는 논리를 들고 나온다. 살릴 수 있는 목숨 300여 명을 수장(水葬))한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자백했던 권력이 이를 뒤집으려는 것이다. 지방선거 때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바꾸겠습니다!”며 읍소했던 여당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세월호 유족에게 “가만 있으라”면서 삿대질로 안면을 싹 바꿔버렸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의 주체 문제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를 들이댄다. 하지만 대통령은 참사 직후 ‘해경 해체’를 선언해 귀책사유가 정부에 있음을 명확하게 교통정리했다.


 성스러운 ‘엄마’를 팔고 다니는 단체는 유족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특례입학이나 의사자 지정설을 퍼뜨리며 상처에 소금뿌리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일부 언론은 ‘세월호 수습 때문에 경제가 죽어간다’ ‘위헌소지가 있다’는 그럴 듯한 논리로 ‘물타기’에 앞장선다.


 세월호와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이른바 ‘철피아’(철도마피아) 척결에 나선 검찰은 모두 여당 의원만 걸려들자 전형적인 물타기를 하다 망신을 당했다.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 세 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지경에 이르자 숨겨뒀던 카드를 성급하게 꺼냈다. 야당에도 같은 비중의 비리정치인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했다. 물타기전략을 구사한 검찰은 뜻있는 국민의 지탄을 받겠지만, 권력 핵심으로부터는 뒤에서 박수와 격려를 받는다.

                                                                                          


 독재정권시절 전형적인 정치공작수법의 하나로 동원되던 물타기 전략이 묘약만은 아니다. 잠시 통증을 잊는 수단이 될지는 모르지만, 국가와 국민의 장래에는 독약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다.


 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된 사건이 불거지자 권력핵심은 ‘대선 불복하겠다는 거냐’는 말을 들먹이며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카드로 물타기에 나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발언 여부를 둘러싸고 정쟁을 벌이면서 대선개입사건이 흐지부지되길 바란 것이다. 결과는 참담하다. 박근혜 정부의 골든타임인 집권 첫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고 말았다. 전임 정부의 잘못을 깨끗이 받아들여 사과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정도(正道)를 걸었으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었음에도 이렇다할 업적 하나 남기지 못했다.


 게임에서 이기지도 못했다. 악역을 맡았던 여당 실세의 자기고백을 통해 NLL포기 발언은 없었다는 걸로 허망하게 끝났다. 그는 “1년 동안 여야·여의도 정치는 2012년에 끝난 대통령 선거의 연장전을 치른 한해였다”면서 회한만 되씹었다. 정부와 여당은 그 과정에서 전국공무원노조도 대선에 개입했다며 또 다른 물타기도 시도했으나 ‘찻잔 속의 폭풍’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로 만신창이가 된 권력이 물타기수법으로 꼼수를 부리지만, 길게 보면 제 발등 찍는 꼴이다. 물타기 유혹은 끊기 어렵고 야금야금 몸을 망치는 마약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칼럼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