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던 1938년 10월30일 저녁 7시58분, 미국 CBS 라디오에서 드라마를 방송하다 갑자기 뉴스를 전했다.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긴급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습니다. 화성인들의 군대가 뉴저지 주의 한 농장 부근에 착륙했습니다. 화성인들이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도로는 피란민 행렬로 북새통입니다. 미국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러자 뉴욕에서는 공포에 질린 수천 명의 시민이 진짜 피란에 나섰다. 뉴저지 주에서는 “유독가스가 퍼졌다”는 유언비어가 돌면서 20여 가구가 탈출을 시도했다. 피츠버그에서는 절망한 여성이 독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미국 전역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훗날 600만 명의 청취자 가운데 120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뉴욕 타임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보도했다. ‘겁먹은 사람들이 화성인의 독가스를 피하려 젖은 타월을 얼굴에 두르고 집을 뛰쳐나갔다. 서부에서는 로키산맥으로 향하는 피란민 행렬이 줄을 잇고 일요일 저녁 예배를 드리던 신자들은 종말이 왔다는 사실에 몸을 떨었다.’

 

  이 뉴스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화성인의 습격’이라는 드라마의 일부였다. 뉴스를 보내기 전 드라마 제작가 오손 웰스는 성우의 목소리를 빌려 실제 사실이 아니라 드라마라는 점을 몇 차례나 강조했다. 하지만 뉴스 형식을 동원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삽입하자 드라마를 듣던 청취자들이 실제상황으로 착각한 것이다.

 

  매스미디어 역사상 가장 큰 해프닝으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당시 23세이던 웰스는 ‘천재적 연출가’ ‘드라마의 신동’으로 불렸다. 웰스는 영화사에 스카우트돼 3년 뒤인 1941년 ‘20세기 최고의 영화’로 격찬 받은 ‘시민 케인’을 만들었다.

                                                              

 

  드라마 ‘화성인의 습격’은 영국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공상과학소설 ‘우주전쟁’(원제 The War of the Worlds)을 각색한 것이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라디오용 드라마로 제작됐다. ‘우주전쟁’은 드라마보다 40년 전에, 지금으로부터는 115년 전인 1898년에 첫 출간됐다.

 

  문어처럼 생긴 괴물 화성인들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앞세워 지구를 침공하는 게 줄거리다. 이 작품은 주인공 ‘나’의 적막하고 불길한 목소리로 시작된다. “19세기 마지막 몇 년, 만약 인간보다 높은 지능을 소유했으면서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결국 죽게 마련인 존재에 의해서 이 세계가 날카롭고 면밀하게 관찰되고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으리라.” 주인공은 ‘유일한 지성체는 자신’이라고 믿는 인간의 오만함과 인간보다 뛰어난 외계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러던 20세기 초 어느 날, 그가 사는 영국의 작은 마을에 화성에서 날아온 실린더 모양의 우주선이 착륙한다. 그들은 화성에 종말이 닥치자 지구를 찾아왔다. 그날 밤 우주선 안에는 거대한 눈과 촉수를 가진 화성인이 숨어 있다가 초록색 열선(熱線)과 독가스를 발사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런던은 곧 초토화된다. 화성의 우주선이 연이어 도착하면서 전투 기계로 무장한 화성인들이 지구를 점령해 나간다. 지구에서는 각종 무기로 대항한다. 지구인들은 19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핵무기까지 등장시키지만, 화성인은 그마저도 쉽게 무력화한다. 생존자들은 지구가 화성인에게 정복당했다고 절망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성인들이 모두 죽어간다. 그들은 지구의 박테리아에 감염돼 죽게 된 것이다. 지구의 미생물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성인들이 모두 죽어버리자 생존자들은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우주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외계인의 침공에 대비하기로 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인물들의 심경변화와 행동을 통해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이렇게 비판한다. “인간은 끝없는 안이함으로 그들의 하찮은 일에 정신이 팔려 이 지구 위를 오갔으며, 자신들의 왕국이 물질을 지배하고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차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기껏해야 지구상의 인간들은 이런 식의 공상에 빠졌다. ‘화성에도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지 몰라. 아마도 우리보단 열등한 존재라, 우리가 사절단이라도 보낸다면 크게 환영할 걸.’”

 

  소설은 인간의 잔혹성도 신랄하게 꼬집는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젠 사라지고 없는 들소나 도도새 따위의 동물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열등한 생물들에게도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철저한 파멸을 야기시켰던가 하는 것 말이다. 호주 타즈메이니어인들은, 영락없이 인간과 같았음에도, 유럽에서 이주해 온 자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불과 50년 만에 완전히 멸종당하고 말았다. 만약 화성인들이 이와 같은 생각으로 전쟁을 걸어온다면, 우리가 무슨 자비의 전도사라고 불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1898년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으며 운하도 있다’고 관측 결과를 발표한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의 주장에 감화를 받아 바로 그해 이 소설을 쓰게 됐다. 로웰은 구한말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라는 용어를 만들어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로웰에 앞서 1877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지오바니 시아파넬리가 화성표면에서 선(線)을 발견한 이래 외계인이 존재할 수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행성으로 회자돼 왔다. 로웰은 ‘이 선들은 화성인들이 도시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개설한 운하’라는 견해를 최초로 내놓았다.

 

  문명비평가이기도 한 웰스가 소설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건 단순히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가 초래할 수 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는 외계 생명체들의 행태를 빗대어 인간의 만행을 비판하려 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과학 문명에 대한 맹신과 영국 같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도 비판하고 있다. 웰스는 당시 유럽이 전 세계를 약탈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화성인을 단순히 감정 없는 침입자로 묘사했다. 이 소설은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우주전쟁’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 문학작품이다.

 

  웰스는 이미 1895년 ‘타임머신’, 1987년 ‘투명인간’이란 SF소설을 발표해 일약 유명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타임머신’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이기도 하다. 웰스는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프랑스 작가 쥘 베른과 더불어 공상과학소설의 개척자로 불린다. 베른은 ‘80일간의 세계일주’ ‘해저 2만리’ ‘달나라 일주’라는 작품으로 이름을 떨쳤다.

 

  두 작가는 ‘미래와 상상’을 소설 속에 그려내고 있는 공통점을 지녔다. 두 사람 모두 100여 년 전에 작품 활동을 했음에도 20세기와 21세기의 작가들을 제치고 열독 상위권에 올라 있다는 것은 줄거리의 흥미진진함과 소설 속의 온갖 장치가 현대 소설을 읽는 느낌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두 작가가 소설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확연히 다르다. 베른이 인류와 문명을 낙관적으로 그리고 있는 반면 웰스는 인류 문명에 대한 지독한 비관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베른이 당대의 과학적 지식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 실현 가능한 발명품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킨 데 비해 웰스는 온갖 장치를 ‘상상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꾸몄다. 베른은 “나는 그의 상상력 넘치는 천재성을 한없이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웰스를 격찬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 <우주전쟁>

 

  웰스의 ‘우주 전쟁’은 발표되자마자 크나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문어처럼 생긴 화성인, 긴 촉수로 인간을 휘어잡아 죽이는 외계 생명체, 바퀴 대신 발이 달린 거대한 로봇, 철제 무기를 녹이는 외계의 광선포, 열선에 의해 녹아내린 도시 같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지난 100여 년간 소설과 영화에서 수없이 변주돼 왔다. 오늘날까지 SF 장르에서 가장 사랑받는 행성 간의 전쟁, 레이저 빔, 원자폭탄, 외계의 내습 같은 소재는 한결같이 이 작품에서 유래했다. SF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생김새가 대부분 문어와 비슷하게 그려지는 것은 ‘우주전쟁’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생소하게 들렸을 최첨단 무기는 상당부분 현실화했다. 시대를 앞서갔던 작가 웰스는 핵폭탄에 관한 이론이 나오기 훨씬 전에 원자폭탄 전쟁을 예견했다. 반전활동가, 평화적 세계통합을 꿈꾸는 유토피안으로 살았던 사회주의자 웰스는 자신의 예언이 태평양 전쟁에서 비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생전에 목격했다. 웰스는 2차 세계대전 발발, 나치 독일 패망, 유럽연합, 프리섹스 등을 족집게처럼 맞혔다.

 

  이 소설은 SF를 문학의 반열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된다. 현대 환상문학의 대가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인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웰스는 모든 공상과학소설을 반세기 앞서 예시하고, 그것을 넘어선다”고 격찬한다.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우리의 세계와 사상은 웰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라고 상찬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웰스는 무엇보다 사상과 상상력의 해방자라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찬양한다.

 

  이 소설은 문학 장르뿐만 아니라 발명가와 과학자가 되고 싶은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소설 ‘우주전쟁’은 1938년 오손 웰스에 의해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된 이후 1953년에는 조지 팰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해 2005년 개봉한 영화 ‘우주전쟁’ 역시 웰스 소설의 각본이다. 스필버그는 “웰스는 시대를 앞선 상상력을 가진 인물이다. 내 영화 ‘우주전쟁’은 그에 대한 존경과 헌사의 표현”이라고 숭앙했다. 1988년에는 TV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화성침공’이란 영화를 만든 팀 버튼 등 수많은 영화감독과 엔터테이너들은 가장 큰 영감을 받은 문학작품으로 소설 ‘우주전쟁’을 꼽았다. 이 소설은 ‘스타십 트루퍼스’, ‘인디펜던스데이’ 등 다수의 대형 극영화들의 모티브도 됐다.

 

  ‘우주전쟁’은 문화 분야뿐만 아니라 물리학이나 생물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26년 세계 최초로 액체추진 로켓 발사 시험에 성공한 로버트 고다드는 이 소설에서 화성인들이 타고 온 물체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소설 속에 등장한 생물학 무기, 레이저 총, 탱크는 20세기 들어와 실제로 제작됐다. 미 항공우주국의 화성탐사선 발사계획도 이 소설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과학적 상상을 통해 사회문제를 제기했던 웰스의 사상은 많은 후진 작가들에게 이어져 SF가 단지 ‘공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데 이바지했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9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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