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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0)--<상대성이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서기 2146년, 한 우주비행사가 광속으로 우주여행을 떠나 10분을 머물다 지구로 돌아온다. 그 동안 지구에서는 무려 80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에겐 지구가 낯설 수밖에 없다. 그가 살던 곳이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옛날 걸어본 듯한 길을 되짚어 간다. 그가 도착한 집에는 한 여성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이 비행사를 2층으로 안내한다. 거기엔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백발노인이 누워 있다. 노인은 비행사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그윽한 눈초리로 바라보다 뜨겁게 포옹한다.


 

    백발노인은 우주비행사의 아들이다. 젊은 비행사는 자신보다 훨씬 늙어버린 아들을 보고 어쩔 줄 모른다.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은 아들은 아버지를 간절히 기다렸다고 말한다. 시간을 테마로 한 옴니버스 영화 ‘텐 미니츠 첼로’(Ten Minutes Older: The Cello) 중 마이클 레드퍼드 감독의 10분짜리 작품 ‘별에 중독되어’(Addicted To The Stars)의 줄거리다. 한 사람에게 10분이라는 시간이 어떤 이의 한 평생이 되는 역설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기댄 놀라운 시간여행의 상상력에 따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있자 “미인과 함께 있으면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지지만 뜨거운 난로 위에서는 1분이 1시간보다 길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고 흥미로운 비유로 답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저작 ‘상대성이론: 특수 상대성이론과 일반 상대성이론’(원제 Uber die spezielle und die allgemeine Relativitatstheorie)은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관측하는 입장에 따라 바뀐다는 게 뼈대다. 그 동안 시간과 공간은 전 우주에 걸쳐 오직 하나뿐이며, 같은 공간에 펼쳐 있을 뿐이라는 믿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같은 공간에 있고, 모든 사건은 동일한 공간에서 일어난다.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하나뿐인 동일한 시간이 적용된다. 이 같은 고정관념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뿌리째 바뀌게 됐다. ‘4차원 시공간’ 개념도 그렇게 생겨났다.


 

   특수상대성이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시간은 물체의 이동속도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한다. 물체가 빛의 속도로 움직일 때 시간은 정지한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움직이면 시간은 거꾸로 가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다. 달 표면에 있는 사람이 보면 우주선 안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우주선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빨라지는 것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과 비교했을 때만 의미를 가진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과 정지해 있는 우주선의 길이는 원래 같다. 하지만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우주선은 길이가 줄어든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체의 길이도 상대적이다. 물체는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가속하기 어려워진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의 질량은 커진다. 
                                                                      

                                                     <말년의 아인슈타인>

 

  어떤 초문명의 기술로도 넘을 수 없는 속도의 한계가 이 세계에 존재한다. 속도의 한계는 빛의 속도다. 빛의 속도는 관측하는 장소의 속도나 광원의 운동속도에 관계없이 언제나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일정하다. 얼마 전 국제적 과학연구그룹인 오페라(OPERA) 팀이 ‘빛보다 빠른 물질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가 1년도 안 돼 철회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해프닝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현대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방정식인 E=mc2은 특수상대성이론의 가장 중요한 결과다.


   일반상대성이론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빛은 중력에 의해 휘어진다. 물체도 아니고 무게도 없는 빛이 중력에 의해 나아가는 코스가 바뀐다. 불가사의하지만 실제로 태양 뒤편의 별에서 나오는 빛이 태양 근처에서 휘어지는 것이 확인됐다. 이 휘어짐은 진공상태에서도 일어나지만, 물속에서 일어나는 빛의 굴절과는 다르다. 빛이 휘는 것은 공간이 휘기 때문에 일어난다. 중력은 시간의 흐름에도 영향을 끼친다. 중력에 의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빛을 휘게 할 뿐만 아니라 삼켜버릴 정도로 중력이 강한 ‘블랙홀’ 근처에서는 시간이 거의 정지해버린다. 우주선이 블랙홀 근처까지 날아가 잠시 머물렀다가 돌아오는 것을 상상해 보자. 머무는 장소를 잘 선택하면 여행자는 1년 밖에 보내지 않았는데도 지구에서는 100년이 지나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블랙홀’이 ‘미래의 타임머신’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영화 ‘별에 중독되어’도 이 현상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공간’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전적으로 피해야 하며, 공간으로부터는 어떠한 사소한 개념조차 구성할 수 없음을 시인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 가지 현상을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규명했다. 첫째, 수성이 태양 둘레를 공전할 때 공전궤도가 세차운동(歲差運動·Precession)하는 값을 정확하게 밝혔다. 둘째, 멀리 떨어져 있는 별에서 나오는 빛이 태양 부근을 지날 때 태양의 만유인력에 의해 휘는 것이다. 셋째, 중력 적색 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매우 큰 질량을 가진 별에서 나오는 빛은 파장이 증가한다.
                                                                         

                                                    <아인슈타인의 책상>

 

   일반상대성이론은 수성의 근일점(타원궤도 중에서 태양에 가장 가까워지는 점)이 100년마다 43초씩 이동하는 현상을 설명해냈다. 1960년에는 금성의 근일점이 100년에 8초씩 이동한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 일반상대성이론을 뒷받침했다. 중력에 의해 빛이 휘어진다는 사실은 1919년 5월29일 태양의 일식 때 확인됐다. 이 실험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예측은 1% 이하의 오차로 적중했다. 중력 적색 편이는 1964년에 실험으로 확인했다.


   특수 상대성이론과 일반 상대성이론의 차이점은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조건이 붙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적용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이 적용되는 것은 ‘중력의 영향이 없다’ ‘관측자가 가속도 운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그런 제약을 없애고 더욱 일반적인 상황에 적용되도록 발전시킨 이론이다. 일반이론은 특수이론을 그 속에 포함한다. 일반이론에서는 반드시 중력이 강한 곳에서 시간이 느려진다.


  이 책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 1915년 일반상대성이론에 관한 논문이 발표된 뒤 1916년 독일에서 처음 출판됐다. 그 무렵, 상대성이론을 이해한 과학자는 세계에서 12명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웠다. 그래선지 아인슈타인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학으로서뿐 아니라 철학적인 관점에서 상대성이론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를 위해 나는 이 책을 쓰게 됐다. 이론물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수학을 모르는 독자들이 상대성이론에 대한 정확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도록 이 책은 의도되었다.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은 독자라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 동상>


  아인슈타인에게는 16살 때부터 사로잡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광선과 나란히 달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만일 내가 빛의 속도로 날아간다면 내 얼굴이 거울에 비칠까?’라는 의문이었다. 상대성이론의 발견으로 그가 내린 결론은 ‘만일 빛이 소리와 같은 성질을 지닌다면 광속으로 날아가는 얼굴에서 나온 빛은 거울에 도달하지 못한다’였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스위스 특허청 직원으로 일하던 무명시절에 알아냈다. 그가 특허 심사관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시계에 대한 특허가 매우 자주 접수됐다. 당시 도시를 잇는 열차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여러 도시들 간에 시간을 맞추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도시는 정지해 있는 좌표계이므로 두 도시 사이에 시간을 맞추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중 하나의 좌표계가 움직이고 있다면 정지한 좌표계와 운동하는 좌표계의 시간을 어떻게 맞출까하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궁금증이었다. 어느 한 좌표계에서 ‘동시’라고 말 할 수 있는 시간이 다른 좌표계에서는 ‘동시’가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음표도 생겼다.

 

   1905년 5월 어느 날, 아인슈타인은 특허국 근무가 끝난 뒤 친구 베소의 집에 들렀다. 그는 빛과 관성계(慣性系)에 대한 문제를 한참 동안 토론하고 돌아갔다. 다음날 아인슈타인은 베소를 다시 찾아와서 “고마워, 어제 그 문제 완전히 다 풀렸어”라고 말을 건넸다. 그때부터 특수상대성이론에 관한 논문을 쓰기까지는 불과 5주정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한다.


   뉴턴에게 24~25살 때 ‘기적의 해’가 있었듯이 아인슈타인이 26살 때인 1905년도 ‘기적의 해’로 불린다. 특수상대성이론, 광양자가설, 브라운운동 이론, 질량과 에너지의 동등성 등 주요 4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한 해여서다. 이 4개 논문은 공간, 시간, 물질에 대한 물리학의 관점을 바꿔 놓았다.


   상대성이론은 그때까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올바른 이론으로 받아들여진 뉴턴역학을 대체했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훗날 원자력 발전 등으로 인류의 생활에도 폭풍을 몰고 왔다. 특히 특수상대성이론의 유명한 공식 E=mc2은 핵무기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핵무기는 인류의 사고에 격변을 몰고 왔다. 상대성이론은 과학은 물론 철학, 영화와 애니메이션, 미술, 사진, 문학, 음악, 건축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스님 같은 종교인도 생전에 상대성이론을 연구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 때문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새천년 직전인 1999년 아인슈타인을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3년 7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