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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1)-<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호화·사치생활로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악의적으로 덧씌워진 얘기의 하나다. 혁명세력이 왕실에 대한 불신을 증폭하기 위해 조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와 흡사한 말이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어떤 공주가 농부들로부터 빵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브리오슈(버터를 듬뿍 사용해 만든 단과자빵)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일화다. 여기서도 공주는 뻔뻔한 여자로 매도되지는 않는다. 공주가 알고 있는 빵이름이 브리오슈뿐이었던 데다 호의로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루소는 빵이 없으면 와인을 마시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와인을 마시려는데 빵이 없었다. 그 순간, 루소는 공주의 이 삽화를 떠올리고선 브리오슈와 함께 와인을 마신 일을 ‘고백록’에 썼다. 루소가 ‘고백록’을 쓴 것은 오스트리아 공주였던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에게 시집오기 전의 일이다.

  앙투아네트는 루소의 영향으로 전원생활을 동경했다. 농민들의 진짜 생활은 알지 못한 채 일반 농가를 재현하고 직접 소젖을 짜기도 했다. 루소 때문에 귀부인들도 아이에게 모유를 직접 먹이는 풍습이 생기자 그녀는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 그녀는 베르사유의 공원에 손님들을 불러 자신의 젖가슴을 본떠 만든 도자기 잔에 우유를 따라주곤 했다. 그녀는 훗날 제네바에 있는 루소의 묘지를 찾아갈 정도였다. 루소가 쓴 책 한권 때문에 자신이 혁명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프랑스 혁명 지도부의 정전(正典)이 된 책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원제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이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10년도 전에 세상을 떠난 루소는 결코 혁명을 사주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렇지만 자유, 평등, 주권, 일반의지 같은 ‘사회계약론’의 핵심 단어들은 혁명주의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절대왕정에 정면으로 맞선 프랑스혁명의 교과서가 된 것이다.


   ‘사회계약론’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 그 사람들보다 더한 사슬에 묶인 노예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한 마디는 사실상 프랑스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루소는 이 책의 거의 모든 장에서 인간이 본성적으로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루소는 무엇보다 자유의 절대화를 부르짖었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며, 인간의 권리, 나아가서는 그 의무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인간의 권리’란 말은 이 책에 처음 등장한 뒤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타고난 자유를 합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바로 사회계약의 목적이라고 루소는 강조한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자연 상태에서 누리는 ‘자연적 자유’, 사회계약 이후 시민 상태에서 누리는 ‘시민적 자유’, 인간이 진실로 자신의 주인이 되게 하는 ‘도덕적 자유’로 구분한다.

                                                                                                  

                                                                                  <루소 초상화>


   루소는 ‘사회계약’을 국가성립의 기초라고 여겼다. 국가는 정신적이고 집합적인 단체이며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계약으로 탄생한 국가는 구성원 개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이익에 반하는 이해를 갖지 않고, 가질 수도 없다고 했다. 루소는 사회계약의 특성이 힘과 자유의 전면적 양도에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는 그 신성한 계약에 의해 성립하며 이에 반하는 일은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저마다 신체와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삼아 일반의지의 최고지도 아래 둔다. 그리고 우리는 구성원 하나하나를 전체와 나누어질 수 없는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사회계약의 본질이다. 사회계약이란 인민 모두가 자신의 권리와 자기 자신을 공동체 전체에 완전히 양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탄생하는 것이 개인 의지의 집합체인 ‘일반의지’다.


   ‘사회계약론’에서 열쇳말은 ‘일반의지’다. 일반의지는 ‘국민의 뜻’이다. 오늘날 선거는 한 사회의 일반의지가 드러나는 계기다. “일반의지는 공통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이지만, 전체의지는 개인의 이익만 고려하는 특수의지의 총화이다.” 일반의지는 독립의 힘이고 민중의 의지다. 일반의지가 글로 표현된 것이 법이다. 사람들이 최고의 충성을 바쳐야 할 것이 법이며, 그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논리에 루소 사상의 방점이 찍혀 있다.

 

   이 일반의지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이 합의하는 거대한 공동체는 무해한 경우라면 집단적 행복의 유토피아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공동체란 ‘당이 언제나 옳다’는 강령에 따라 선과 악이 결정되는 전체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루소가 자유국가 이념의 아버지이면서 민중 독재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야누스의 모습을 떠안았다.

                                                                                               

                                                                  < 제네바 루소 공원의 루소 동상>


   루소의 일반의지는 주권과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 주권은 입법하는 것이며, 법은 일반의지의 공정한 작용이다. 주권의 본질은 세 가지다. 첫째, 주권은 양도할 수 없다. 주권은 일반의지의 행사이고, 그 의지는 양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양도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주권이 아니라 힘이나 권력이다. 둘째, 주권은 분할할 수 없다. 일반의지의 행사가 주권이어서 분할할 수 없는 단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분할한다면 그것은 특수의지가 되며, 그것의 행사는 주권이 될 수 없다. 셋째, 일반적 약속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권은 사회계약에 의해 정치체가 부여받은 모든 성원에 대한 절대적인 힘이다.


   루소의 주권론이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루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유명한 영국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영향을 받았다. 마르크스가 헤겔의 변증법을 배워 유물 변증법을 창안했듯이 루소는 홉스의 주권론을 인민주권론으로 승화시켰다. 홉스의 이론을 루소가 이어받아 혁명적인 민주주의 이론으로 재탄생시킨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이야말로 루소의 천재적인 착안이라고 평가한다.


   정치적 권위는 본질적으로 국민 안에 있다는 게 루소 정치사상의 핵심이다. 여기서 정치적 권위는 다름 아닌 주권을 가리킨다. 정부나 국가 행정은 주권에 종속된 기관이며, 행정기능이 위임된 위원회 같은 것에 불과하다. 국가를 구성하는 법률은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하고, 정부는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정부의 통치가 일반의지에 반할 경우, 국민은 언제든지 의회를 소집해 행정가를 소환할 수 있다.

 

   루소는 국가와 사인(私人)의 관계를 규정하는 헌법(공법), 사인과 사인의 문제를 다루는 민법 등을 형법과 구별하면서 형법에 대해서는 ‘법을 지키게 하는 법’이라고 정의했다. 루소는 민주주의가 항상 공동선을 보장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외부 기구는 정치보다 우위에 있는 공평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유명한 말은 루소가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은 아니다. 그 정신이 담긴 게 ‘사회계약론’이다. 그가 고창(高唱)한 뜻은 자연 상태의 자유와 평등, 건강한 도덕심을 회복하는 길을 찾자는데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지금에야 상식처럼 들리지만, 당시 지배계급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이 출간되자 파리 고등법원에서 압수명령과 더불어 루소에 대한 체포명령이 떨어진 게 이를 입증한다.

 

   이 책은 1762년1월18일 프랑스가 아닌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출판됐다. 책이 공식적으로 프랑스 국내에 반입되지 못했고, 은밀하게 들여온 책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알려졌다. 프랑스 혁명으로 감옥에 갇힌 루이16세가 “나의 왕국을 무너뜨린 놈은 루소와 볼테르 두 놈”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당시 ‘일반의지’ ‘사회계약’이라는 말은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책의 들머리에 나오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는 문구는 그 뒤 수많은 반체제 운동가들이 슬로건으로 숱하게 사용해 책 못지않게 유명해졌다.


   프랑스 대혁명은 이 책에 담긴 이념을 빌려왔다. ‘모든 주권은 국민 안에 있다’는 것과 ‘법은 전체의사의 표현’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이 책은 프랑스 대혁명은 물론 유럽 곳곳에서 근대정치 태동의 원동력을 제공했다. 미국 독립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사회계약론 1762년 판본>
   한편으로는 루소가 창안한 멋진 정치공동체의 모델이 전제한 사회와 국가의 관계가 현실세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드러나 수많은 비판을 낳았다. ‘루소가 민주주의 스승인가 전체주의 창시자인가’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자유주의 시대인 19세기에는 ‘사회계약론’에 대한 비판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벤자멩 콩스탕은 “사회계약론은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의 가장 끔직한 보조자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루소는 결코 전체주의 정권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일반의지라는 이념이 많은 문제의 소지를 담고 있어 애초 취지와 다른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논란을 뛰어넘어 그의 정치철학은 현실정치, 21세기의 지구촌에서도 꾸준히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근대사의 문을 열어준 과학의 천재가 아이작 뉴턴이라면 인문학의 천재는 루소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의 저명한 문예잡지 ‘애틀랜틱 먼슬리’는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8세기를 대변하고,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19세기를 대변한다면,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은 20세기를 대변할 것이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다양한 ‘계약’을 통해 평화를 유지해오고 있기도 하다. ‘사회계약론’은 지금도 ‘이 타락한 인간사회에 어떠한 정치체제를 구성할 때 인간이 자연 상태의 선한 본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3년 8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