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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4)--<인구론>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인구 과잉이 촉발한 지구촌 위기를 그린 영화와 소설이 전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계급투쟁을 그렸지만, 한정된 자원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정인구를 유지하는 게 필수조건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신작소설 ‘인페르노’는 주인공인 유전공학자 조브리스트의 입을 빌려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진짜 질병은 인구 과잉”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영화와 소설은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문제작 ‘인구론’(원제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설국열차’는 열차의 주인 윌포드의 입을 통해 맬서스의 음울한 디스토피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자원이 제한된 열차 안에서 인구, 식량을 조절하기 위해 계획적인 반란으로 인구수를 줄여가는 플롯은 ‘인구론’의 논리와 빼닮았다. 단테의 ‘신곡’ 가운데 ‘인페르노’(지옥 편)에서 영감을 얻어 쓴 브라운의 소설 주인공은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줄이는 생물학적 테러를 기도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구론’의 철저한 신봉자이기도 하다.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대목이다. 이 공식은 익명으로 출간한 초판에만 나온 뒤 2판부터는 빠졌다. 맬서스의 인구 성장에 대한 가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생존은 인구 규모에 의해 강한 제약을 받는다. 생존 수단이 증가할 때 인구도 증가한다. 인구 증가의 압력은 생산력의 증가를 필요로 한다. 생산력의 증대는 더 큰 인구 성장을 기대하게 한다. 생산력의 증대가 인구 성장의 필요 정도를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인구 성장의 수용력은 한계에 봉착한다. 성행위, 노동, 아이 등을 위한 개인의 비용/수익이 인구의 증가나 감소를 결정한다. 인구가 생존 가능한 규모를 초과하면 자연은 사회 문화적인 잉여(잉여 인구)에 대해 특정한 효과를 부과한다.’


  맬서스는 인간이 무절제한 성욕 때문에 자식을 분별없이 많이 낳아 이를 그대로 둘 경우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우려한다. 그 결과는 빈곤의 악순환이다. 그는 인구 급증을 막는 방법으로 전쟁, 기근, 질병 같은 사망률을 높이는 ‘적극적 억제’와 출산율을 낮추는 ‘예방적 억제’를 들었다. 그가 권고하는 방법은 물론 예방적 억제다. 맬서스가 살던 200여 년 전에는 피임법이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을 늦게 하거나 금욕으로 출산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를 펼치고 있다.


 

   맬서스는 특히 하층민들이 성욕을 참지 못하고 국가의 빈민 보조금에 기대어 아이를 많이 낳으려 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국가가 빈민자를 구호해 생활 조건을 개선하면 출산율만 높아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때문에 국가가 극빈자를 구호하거나 개인이 자선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직후여서 도시 빈민이 증가한 것은 물론 전체 인구가 대폭 늘어나 식량을 수입해야 했다.


 

    다행히 맬서스의 예측은 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빗나갔다. ‘인구론’이 첫 출간된 1798년 이후 200여 년 동안 세계 인구는 6배가량 늘어났지만, 식량 생산량은 훨씬 더 큰 규모로 증가했다. 인구는 피임법의 보편화로 상당수 국가에서 무분별한 출산이 줄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진 않았다. 식량도 농업과 생산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절대적인 부족현상은 면했다. 다만 분배의 불균형만 찾아볼 수 있다.
                                                                 

 

   ‘인구론’은 틀린 예측보다 사회불평등을 옹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져 더 큰 비난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이런 부분들이 비판의 표적이 됐다. ‘도시의 거리들은 더욱 비좁아져야 하며, 보다 작은 집에 보다 많은 사람이 거주하도록 해 전염병이 창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시골의 경우 썩은 물웅덩이 근처에 마을을 짓고, 특히 건강에 유해한 습지대에 새 정착지를 건설하도록 적극 권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염병 치료약이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사회혼란을 근절할 방안을 기획함으로써 인류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는, 인도주의적이나 잘못된 견해에 사로잡혀있는 이들을 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만 한다면 연간 사망률은 1:36이나 1:40에서 1:18, 혹은 1:20까지 높아질 것이고, 그러면 모두가 너도나도 결혼적령기에 갓 이르자마자 결혼한다 해도 기근으로 굶어죽는 사람은 거의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무임승차한 꼬리칸 탑승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앞쪽 칸 사람들이 군대를 동원해 서슴없이 학살을 저지르는 상황과 흡사하다.


  이 같은 논쟁적인 주장으로 인해 이 책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인구론’은 인간이 이성의 힘으로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본 사회주의자와 계몽주의자들의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드높았다. 이 때문에 맬서스는 생전은 물론 죽은 뒤에도 엄청난 비판과 악담에 시달려야 했다.

 

   ‘인구론’은 당시 자본가들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에게는 원군이었다. 빈곤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같은 데다 사회 복지에 애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빈민 구제와 인구 증가를 모두 지지했던 윌리엄 피트 영국 총리도 입장을 바꿔 둘 다 반대했다. 그렇지만 맬서스에게 악의나 우생학적인 숨은 의도 같은 게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빈곤과 인구 증가 가운데 후자가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기에 작은 해악을 감내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맬서스는 초판을 익명으로 출간하면서 제목도 ‘인구의 원리에 관한 소론: 윌리엄 고드윈, 콩도르세, 그 외 여러 저술가의 연구를 논평하면서 장래의 사회개혁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함’이라는 긴 이름을 붙였다. 파격적인 주장의 반향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2판부터는 유럽 각국의 인구 관련 자료를 망라해 객관성을 보강했다. ‘도덕적 억제’를 통한 인구 문제 해결 가능성도 낙관적으로 바꿨다. 빈민 구제는 관련 법률의 완전 폐지가 아니라 점진적인 폐지가 좋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인구론’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 경제에 낙관적인 경제학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도했다. 개혁주의자들은 맬서스의 철자를 고쳐 ‘몬스터(Monster·괴물)’라고 불렀을 정도다. 독일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는 식량 생산력의 비약이라는 변수를 간과한 ‘인구론’을 “세계의 문헌 가운데 가장 멍청한 책”이라고 조롱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맬서스가 말하는 과잉 인구란 자본주의에 의해 불가피하게 생기는 상대적 과잉일 뿐이라고 폠훼했다.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절망에 빠진 빈민층을 위로하고 ‘인구론’을 공격하기 위해 구두쇠 스크루지가 개심한다는 명작 ‘크리스마스 캐럴’을 썼다고 한다.
                                                                 

 

 반면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인구론’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했다. “인구론은 젊은 천재의 작품이다. 인구론의 중요성은 그가 발견한 사실들이 신기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실에서 나오는 단순한 법칙을 강조한 데 있었다. 이 책은 사상의 진보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케인스는 “만일 리카도가 아니라 맬서스가 19세기 경제학이 뻗어 나온 근간이었더라면, 오늘날 세계는 얼마나 슬기롭고 풍요한 곳으로 되었을 것인가”라며 맬서스를 추어올렸다. 구스타프 콘은 ‘인구론’을 “역사를 통틀어 모든 국가 경제에 토대가 되는 가장 중요한 자연법”이라고 상찬했다.


  ‘인구론’은 빗나간 예측과 온갖 비난을 감수하며 20세기 이후 세상을 바꾸는 촉매가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구 폭발을 경험한 개발도상국들이 맬서스의 이론을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경고는 1970~1980년대까지 한국, 중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에서 위력을 떨쳤다. 중국의 엄격한 ‘한 자녀 정책’은 인구론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은 사례다. 이 정책은 요리, 한자와 더불어 중국에서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는 인구의 증가율을 연 1%로 끌어내렸다. 그럼에도 중국 인구는 현재 13억 명을 넘어섰다. 한국도 이 책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1960년대는 세 자녀 운동, 1970~1980년대 두 자녀 운동으로 인구 억제정책을 폈다. 오늘날에는 저출산을 걱정할 만큼 세상이 달라졌지만 말이다.


 

   지구촌 전체로 보면 맬서스의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다. 유엔은 세계 인구가 2011년 70억 명을 돌파해 2025년 81억 명, 2050년에는 96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다. ‘인구론’은 1801년 영국 최초의 근대적 인구 조사가 실시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 바 있다.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인구 증가와 이로 말미암은 천연자원 고갈, 환경오염 등으로 인류가 100년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진단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여기에 ‘신맬서스이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구론’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정립에도 결정적인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윈은 ‘종의 기원’ 서문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모든 동식물에 적용한 것이 자신의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맬서스가 기술진보의 위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인구론’에 담긴 통찰과 현실주의적 비판의식은 오늘날에도 간과할 수 없는 긴요성을 지닌다. 레스터 브라운 미국 지구정책연구소장은 “세계 인구를 80억 명으로 통제하는 데 실패한다면 인류에게 지구가 1.5개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2025년에는 세계 인구 가운데 3분의 1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18억 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식량을 물, 석유 등으로 확대하면 ‘인구론’의 계고장은 더욱 심각해진다. 맬서스를 거짓 예언자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3년 11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