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묘지에서 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저 파괴된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검은 바다에서 연기처럼 꺼진 것은 무엇입니까/인간의 내부에서 사멸된 것은 무엇입니까/일년이 끝나고 그 다음에 시작되는 것은 무엇입니까/전쟁이 뺏어간 나의 친우는 어데서 만날 수 있습니까/슬픔 대신에 나에게 죽음을 주시오/인간을 대신하여 세상을 풍설(風雪)로 뒤덮어 주시오/건물과 창백한 묘지 있던 자리에/꽃이 피지 않도록/하루의 일년의 전쟁의 처참한 추억은/검은 신이여/당신의 주제일 것입니다.’ 대표적 모더니스트인 박인환 시인은 ‘검은 신(神)이여’에서 6·25전쟁이 남긴 절망감을 절규하듯 토한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갈파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입증이라도 하듯 전쟁의 검은 신은 지구촌에서 떠날 줄 모른다. 6·25전쟁 63주년을 맞는 한반도에서도 전쟁의 그림자가 또 다시 희미하게나마 어슬렁거리고 다닌다.
프로이센의 천재군인이었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는 이런 전쟁의 본질을 “단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정치)의 연속”이라는 함축어로 풀어냈다. 전쟁에 관한 최고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원제 Vom Kriege)에서 가장 유명한 이 표현은 국가의 정치적 목적, 정책 목표가 전쟁 수행을 통제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여기서 ‘정책’과 ‘정치’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독일어에서 ‘Politik’이라는 낱말이 두 가지 뜻을 모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전쟁은 모든 현대국가에서 적용된다. 이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한층 선호한 명제이기도 하다. 클라우제비츠는 이와 관련된 명언도 이 책에 남겼다. “전쟁은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대신에 전투로 하는 정치다.” “전쟁은 반드시 정치의 성격을 지녀야 하며 정치의 척도로 재야한다.”
군사적 관점에서도 지금까지 가장 인정받는 전쟁에 관한 본질적 설명은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에서 규정한 정의다. “전쟁은 적에게 우리의 의지를 실행하도록 강요하는 폭력행위다.” 다른 사회현상과 구별되는 전쟁의 중요한 특성 가운데 하나가 ‘폭력성’이다. 이 정의에는 그가 전쟁의 세 가지 요소로 지목하는 수단, 목표, 목적이 모두 포함돼 있다.
물리적 폭력이 전쟁의 수단이라면, 적에게 나의 의지를 강요해 관철하는 것이 전쟁의 목적이며, 그 목적을 확실히 달성하기 위해 적이 저항할 수 없도록 굴복시키는 것이 전쟁의 목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목표와 목적을 명확히 나누고 있다. 전쟁의 목표는 진정한 목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클라우제비츠의 ‘폭력성’에 관한 정의는 전쟁광 아돌프 히틀러에게 명분을 제공했다는 비판자들도 없지 않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오른쪽)>
정치적인 전쟁개념은 이 책에서 삼위일체 전쟁이론으로 나타난다. 삼위일체론은 폭력성과 우연성, 합리성의 균형을 의미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렇게 적었다. “전쟁은 정말 카멜레온 같다. 전쟁은 각각의 구체적인 경우마다 자신의 특성을 조금씩 바꾸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은 전체 현상에 따라, 그리고 전쟁에 널리 퍼져 있는 경향과 관련해서 볼 때 기묘한 삼중성을 띠기도 한다.
삼중성은 다음의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전쟁의 요소인 증오와 적대감의 원초적 폭력성인데 이는 맹목적 본능과 같다. 둘째, 개연성과 우연의 도박인데, 이것은 전쟁을 자유로운 정신활동으로 만든다. 셋째, 정치적 도구라는 종속성인데 이로 말미암아 전쟁은 순수한 이성의 영역에 속한다.” 여기서 폭력성은 국민의 열정으로 표출된다. 우연성은 군대의 전략으로 나타난다. 합리성은 정부의 정책으로 드러난다. 이 전쟁 개념은 국민, 군대, 정부의 3요소가 잘 조화된 전쟁이론으로서 어느 하나라도 균형을 잃으면 와해돼 버리고 만다. 삼위일체로 구성된 전쟁의 본질은 바뀌지 않지만 세 가지 중 어떤 것이 큰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전쟁양상은 바뀔 수 있다.
조르주 클레망소 전 프랑스 총리(1841~1929)가 “전쟁은 군인들에게 맡겨놓기엔 너무나 심각한 문제다.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정치인이 한다”고 정의한 것도 ‘전쟁론’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클라우제비츠는 우연성이 많은 전쟁의 불확실성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전쟁이란 따지고 보면 대부분이 불확실성의 영역에 속한다. 군사행동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 중 4분의 3은 지극히 애매하고 불확실한 구름에 잠겨 있다. 전쟁은 우연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전쟁의 진정한 상태에 관한 정보가 항상 불완전하며, 빈번히 부정확하다는 점을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안개’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설명한다. ‘전쟁의 안개’라는 수사는 전쟁에 내재하는 수많은 가능성이 통제가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하는 전쟁의 불확실성에는 ‘마찰’ 개념도 더불어 작용한다. 전쟁에서 마찰은 ‘전쟁의 안개’란 개념과 쌍벽을 이룬다. 마찰이란 개념은 ‘머피의 법칙’과 흡사하다. 잘못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잘못될 것이며, 최악의 순간에 그처럼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이 책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나폴레옹이 1796년 이탈리아 전쟁에서부터 1815년 워털루 전쟁 때까지 벌인 거의 모든 전쟁이 사례로 등장한다. 나폴레옹의 1812년 러시아 원정은 다각도에서 집중적으로 분석된다. “이전의 모든 평범한 전쟁수단은 보나파르트의 승리와 대담성으로 쓸모가 없어지고 말았다. 1급의 국가들이 보나파르트의 단 한 번의 타격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나폴레옹은 전쟁의 개념을 국민 전체가 참여하는 국민전쟁으로 바꿔놓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정신적 요소를 강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쟁이란 살아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심리적·정신적 상태가 전쟁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위대한 영웅과 위대한 서사시를 남기는 게 아니라, 욕심과 자만에서 탄생되며, 남기는 건 눈물과 고통, 피만 남게 되는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고 교훈적인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전쟁론’의 마지막 문장도 계고문 같다.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고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을 놓치는 사람은 바보다.”
이 책은 고대 중국 병법서인 ‘손자병법’과 비교되곤 한다. 동서양에서 쌍벽을 이루는 두 책은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차이점도 적지 않다. ‘전쟁론’은 전쟁이론, 군사이론을 넘어 정치이론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일종의 정치철학서다. 물론 지휘관으로써 갖추어야할 성격과 태도를 일깨워주고, 위기의 순간에 직관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에 ‘손자병법’은 군대를 운용하고 이끌어나가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손자병법’은 전쟁의 본질보다 전쟁의 대비, 수행, 억제에 관한 내용이 많아 군의 일선 지휘관들에게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전쟁론’은 전쟁의 철학·사상적 측면을 폭넓게 탐구했다. 이 책은 수많은 철학서적과 법학, 과학, 예술 등 인간 활동의 거의 전 분야에 걸친 광범위한 독서의 힘으로부터 나왔다. 헤겔과 칸트 같은 계몽주의 시대 철학자의 영향이 책 속에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전쟁론’은 클라우제비츠가 죽은 뒤 1년 여만에 아내 마리가 협력자들과 초고상태인 유고(遺稿)를 정리해 발간한 미완의 대작인데다 난해한 편이다. 19세기의 군사학자 골마르 폰 데어 골츠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흥미롭게 비유하며 평가한다. “클라우제비츠 이후에 전쟁을 논하려는 군사이론가는 마치 괴테 이후에 파우스트를 쓰거나 셰익스피어 이후에 햄릿을 쓰려는 작가처럼 모험을 무릅쓰는 것과 같다.”
미국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 장군은 ‘전쟁론’에 대해 “과거로부터의 한 줄기 빛이 오늘날의 군사적 난관들에 서광을 비춰주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또 “직업군인인 내가 클라우제비츠에게서 구한 가장 큰 교훈은, 군인이 아무리 애국심과 용기와 전문성을 지녔더라도 단지 삼각대의 다리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군대와 정부와 국민이라는 세 개의 다리가 더불어 받쳐주지 않는다면, 전쟁이라는 과업은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콜린 파월>
‘전쟁과 함께 정치적인 교류는 끊어지고 전쟁 상태는 그 자체의 법칙에 따른다’는 게 19세기 초까지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런 사고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전쟁은 그 자신의 문법은 가지고 있으나 스스로의 논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 전쟁을 지배하는 정치다.
블라디미르 레닌을 비롯한 구소련 지도자들이 클라우제비츠를 받아들인 것은 그의 전쟁철학이 전체주의적 정부에게도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방증한다. 카를 마르크스조차 “클라우제비츠는 지혜의 경지에 이르는 상식을 지니고 있다”고 극찬했다. 마오쩌둥, 체 게바라 같은 혁명가들도 이 책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북한, 중국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군을 당의 통제아래 두는 것도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쟁론’의 가장 큰 영향 가운데 하나는 현대국가에서 국방의 ‘문민통제’ 가치를 일깨워준 점이다. 6·25 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중공군의 참전을 계기로 중국 본토의 봉쇄와 폭격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하자 확전을 염려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맥아더를 해임한 게 실례다. 클라우제비츠가 지적한 미국 정부의 정치적 목적이 전장 지휘관인 맥아더와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국방장관을 민간인 출신으로 임명한다.
애덤 스미스가 근대 국민국가의 경제학을 창설했듯이, 클라우제비츠가 근대 국민국가의 전쟁이론을 창안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쟁론’은 이제 국제정치를 넘어 기업경영 분야에서도 활용되면서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3년 6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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