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유난히 오랫동안 수난을 겪고 있는 인물이 막스 베버다. 금서 목록작성이나 검문검색 때가 되면 웃지 못 할 소극(笑劇)의 무대에 영락없이 오르는 것이 막스 베버의 책이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학 주변에서 검문검색을 하던 경찰은 막스 베버의 책을 들고 다니는 학생이 발견되면 무조건 압수하곤 했다. 마르크스를 부르던 이름 ‘맑스’와 베버의 ‘막스’를 구분하지 못했던 권력 때문에 일어난 책 수난은 1950년대나 21세기를 가리지 않는다.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을 지낸 박상증 원로목사가 1950년대 말 미국 유학을 마친 뒤 배를 타고 귀국 할 때의 일화다. 부산세관을 통관할 즈음 처음 뜯은 상자의 맨 위 책이 하필이면 영어로 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었다. 세관원이 “뭐야, 이거 맑스(마르크스)잖아”하며 책을 옆으로 밀쳐놓았다. 마중 나온 친구가 세관원에게 “이건 공산주의자 맑스가 아니고 기독교 막스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관원은 막무가내로 기다리라고 했다. 외국에서 들여오는 책은 모두 서울 문교부(현재의 교육부)로 가져가 허가를 받아야 하니 며칠 대기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2004년 국군기무사가 병영에 반입할 수 없는 금서를 발표하면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포함시켰다. 경찰청 공안문제연구소가 공산주의 ‘찬양·동조’가 의심된다며 이 책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이름이 비슷한 데다 그의 대표작 ‘자본론’과 책 이름도 흡사했던 게 죄라면 죄다. 그러자 시중에는 “마르크스 때문에 애꿎은 막스 베버가 고생한다”는 우스개까지 나돌았다.

                                                                                                    


  베버의 대표작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원제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은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평했듯이 근대사회과학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논쟁적인 저작 가운데 하나다. 베버의 궁금증은 근대의 합리적인 자본주의가 왜 유럽에서만 싹터 성공적으로 정착했을까하는 것이었다. 이는 서구의 역사가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20세기 들어서야 식민 지배를 청산한 뒤 근대국가를 세운 제3세계의 학자들에게도 중요한 물음표의 하나였다. 베버가 찾은 해답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다.


   그는 근대 유럽의 자본주의 기원을 문명비교 분석방법으로 답을 찾아냈다. 이윤추구 동기에 따라 작동하는 ‘모험가적 자본주의’는 지리적으로 중국, 인도, 바빌론, 시대적으로 고대와 중세에도 있었지만, 서부 유럽의 경우 이와 구별되는 ‘합리적 자본주의’가 출현했다는 점이 독특하다는 게 베버의 생각이다. 이 같은 합리적 자본주의 정신의 뿌리는 칼뱅주의로 대표되는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라고 베버는 맥을 짚었다.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긴 하나, 베버는 자본주의가 태동한 영국의 청교도에 눈길을 뒀다. 청교도의 금욕주의야말로 근대적 자본주의의 촉매라고 여겼다. 금욕주의는 사치와 향락, 태만을 죄악시하는 반면, 부의 축적을 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신의 명령으로 받들었다. 베버는 금욕주의가 돈벌이의 윤리적 멍에를 벗겨주고 자본 축적도 가능하게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 단순화하면 종교개혁이 유럽의 합리적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프로테스탄트’란 말은 1529년 2월에 열린 독일 슈파이어국회에서 루터계 제후(諸侯)와 도시들이 황제 카를 5세를 비롯한 로마가톨릭 세력의 억압에 항거한 데서 유래했다. 루터파 교도들이 이때 얻었던 별명인 ‘프로테스탄트’(항의하는 자)는 세월이 흐르면서 신교도 전체를 이르는 용어로 굳어졌다. 프로테스탄트는 독일, 영국,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제국을 비롯해 전 유럽으로 퍼졌고, 이민자들을 통해 북아메리카까지 확산됐다.

                                                                                                 

                                                                                   <막스 베버>


   베버는 서양 문명의 핵심적인 특징인 합리성이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논증한다. 베버가 말하는 자본주의 정신은 ‘자유로운 노동의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조직화’와 ‘정기적 시장에 맞추어진 합리적 산업조직의 존재’ 같은 것들이다.


  합리적 자본주의가 서구에서만 나타난 것에 대해 베버는 ‘소명’과 칼뱅주의 ‘예정교리’에 주목했다. 예정 교리는 이를 수용한 사람들에게 전혀 새로운 삶의 의미를 제공했다. 예정 교리는 절대주권자인 신이 자신의 뜻대로, 일부 사람만 구원되도록 예정해 놓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직업을 신의 소명이라 믿고, 예정설을 통해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경험적 증거, 즉 성실한 노동의 결과물인 자본이 형성되고 축적된다고 했다.


  프로테스탄트가 득세하면서 게으름이 비판을 받고 원죄를 가진 인간이 노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게 됐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을 구원의 한 방편으로 여긴 프로테스탄트들은 더 했다. 산업혁명 이후 임금노동자가 등장하면서 필요한 만큼만 일하던 시대는 끝났다.

   종교개혁 이전 가톨릭이 대세였던 유럽에서는 노동을 그리 신성하게 여기지 않았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에는 ‘성 월요일’(St. Monday)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토요일부터 술과 유흥에 빠져 지낸 노동자들이 월요일에도 일에 복귀하지 못한 채 쉬는 게 문화처럼 굳어져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보편적인 생활 패턴이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에 대한 가치관은 지금과는 현격하게 달랐다.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지나치게 일을 하기보다는 적당히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자기 쾌락을 위해 쓰는 게 자연스러웠다.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 윤리가 ‘시민계급의 직업정신’도 낳았다고 베버는 말한다. 베버는 자본주의가 근대인의 삶의 운명을 가장 강력하게 결정하는 힘이라는 일반적인 관념을 논의의 전제로 삼는다. 반면에 그는 영리욕이나 화폐욕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통념에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베버가 주장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짧게 간추리면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고 정직하고 근면하게 노동에 열중하라’ ‘항상 근검절약하는 자세를 가지고 살라’이다.
 

   베버의 탁월성은 이 책에서 자신의 견해를 객관적인 사회과학방법론에 따라 설명한데 있다. 당대를 지배하던 가치 중심적 관점이었다. 그는 이 때문에 그때까지 일반적인 학문영역에서 분화되지 않았던 사회학을 창시한 사상가로 학문적 업적을 높이 평가받게 된다. 베버는 관념적 동기가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을 만들어냈다고 정의하지 않고, 단지 관념적·종교적 동기가 근대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역사적 단계가 설립되는 데에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음을 역설한다.

   베버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에서 이 같은 자본주의 정신을 찾아냈다고 한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에서 드러난 윤리의 최고선은 과거와 달리 ‘더욱더 많은 돈을 버는 것, 그것도 모든 적나라한 향락을 엄격히 피하면서 행복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모든 단점을 전적으로 벗어나 돈 버는 것’에 있었다. 프랭클린은 근면·성실하고 금욕적이면서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베버는 이 책이 나온 뒤 이념과 종교를 불문하고 모든 분파로부터 화살을 받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생산수단의 소유가 아닌 정치·문화적인 영역으로 분석한 베버를 공격했다. 가톨릭 쪽에서는 구교문화를 세속적 향락으로 매도한 베버에게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프로테스탄트 사상가들로부터도 열렬한 박수를 받지 못했다. 책 곳곳에 나오는 자본주의의 우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묘사 때문이다.

   이미 중세시대에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복식부기와 다양한 금융기법이 생겨난 지역이 이탈리아의 가톨릭 도시국가였다는 실례를 들어 베버의 논리적 취약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베버를 반박하는 학자들은 자본주의 정신이 전적으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든다.

   그럼에도 베버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은 역사였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1904~1905년 처음 논문으로 발표된 이후 베버의 견해는 청교도의 영향을 받은 유럽인이 신대륙으로 건너가 만든 미국이 근대 자본주의의 종주국이 된 것만으로 어느 정도 입증됐다. 미국은 지금도 이른바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가 주류 계층을 이루고 있다. 독일인들이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한 것 역시 프로테스탄티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청교도 가정의 모습을 그린 삽>


   20세기 후반 들어 동아시아에서 꽃핀 자본주의는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론와 거리감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도 직업과 노동에 대한 의식, 삶에 대한 태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종교적 측면에 있다는 게 베버의 주장이었다.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이 대표적인 본보기다. 동아시아 국가에서 유교윤리가 후발 자본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미국 하버드대 중국계 교수였던 두웨이밍(杜維明)의 주장이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 같은 새로운 견해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파생물이라는 논리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베버 사상의 영향 때문에 유교윤리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종교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선택적 친화력에 관한 베버의 문제의식을 동양사회에 접목시키는 시도여서 베버 사회과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연구주제다.


   최근 중국을 이끌어가는 학자들이 즐겨 읽는 책들 가운데 하나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사실도 이 책이 바꾼 세상을 실증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베버에 천착하는 중국 오피니언 리더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아시아의 발전과 관련된 학문적 연구에 미친 이 책의 영향이 결코 작지 않음을 방증한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3년 10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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