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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박근혜 정부 인사의 부정적 파장

 

 시중에는 꽤 오래 전부터 대통령의 등급에 관한 유머가 나돈다. “1등급 : 국민이 좋아한다. 2등급 : 야당도 좋아한다. 3등급 : 여당만 좋아한다. 4등급 : 적국도 좋아한다.” 오늘(25일)로 취임 한달을 맞는 박근혜 대통령은 몇 등급에 해당할지 자못 궁금하다. 다수 국민과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위태위태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의 취임 초 지지율 가운데 최저로 나타났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이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답변은 44%로 조사됐다. 취임 초 ‘고소영 내각’이란 멍에 때문에 지지율이 추락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50% 이하는 아니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 건 대부분 낙제점 인사 탓이 크다. 이번 조사에서도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 이유에 대해 ‘인사를 잘못함ㆍ검증되지 않은 인사 등용’이라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문제는 낮은 지지율의 원인과 해법이 명쾌하게 드러나 있는데도 고치려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종 의혹으로 자진 사퇴한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시종일관 각 분야에서 가장 출중한 인재를 뽑기는커녕 ‘어디서 저렇게 한심한 사람들만 골라왔을까’하고 의아심을 품는 국민이 날로 늘어날 정도다. 몇 군데가 아니라 대부분 그렇다는 혹평이 나오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쪽에서 일하는 몇 사람의 의견만 들어봐도 금방 평판이 나올 텐데도 박 대통령이 자기 수첩을 토대로 나홀로 인사를 고집하기 때문이라는 게 사후 진단이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검증기준은 말썽많은 이명박 정부 때보다 훨씬 뒷걸음질 쳤다. 공직자의 자격기준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됐다.


   첫 각료 내정자 17명 가운데 세금탈루 의혹자가 10명이며, 학자 출신 5명 중 4명이 논문표절 의혹에 연루됐다. 전관예우 인사도 5명이나 된다. 오죽하면 이명박 정부에서 병역면제,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에 논문표절까지 ‘4+1’의 인선을 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전관예우까지 추가된 ‘4+2’의 인선기준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전관예우는 사실상 부패커넥션이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시대정신이 후안무치냐’는 쓴 소리를 하는 이들도 생겨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외려 인사청문회 제도를 탓한다. “인재를 뽑아 써야 하는데 인사청문회 과정이 털기 식으로 간다면 누가 나서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를 만든 것은 바로 박 대통령은 자신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의 주장으로 검증 대상과 절차를 법제화하고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전 국무위원으로 확대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는 한결같이 “직무수행에 결정적인 하자는 없다”는 도깨비 방망이를 들이댄다. 좌파 진영의 부당한 요구와 야당에 밀려선 안 된다는 딱지를 갖다 붙이면 만능이다. 그동안 우군으로 여겨온 보수언론이 비판의 목소리를 더 높이고 있는 사실은 애써 제외한다. 인사청문회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미국에선 신상털기 차원의 꼼꼼한 검증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주위 사람들의 평판까지 미주알고주알 듣는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인사행태가 단지 인기와 지지율을 낮추는 부작용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이 높아지고 선진국 형으로 개선되기는커녕 선량한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사회의 고질병을 악화시킨다. 앞으로 중책을 맡을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엄격한 자기관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것은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우리 사회가 추구할 덕목이 아니게 됐다. 이런 대통령과 집권당 수뇌부의 입에서도 ‘서민’과 ‘행복’이라는 낱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독일 철학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명연설에서 “국민은 부패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 정부(지도층)가 부패하지 않는다면 그 민족은 존속할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찬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다”고 사자후를 토했던 걸 기억하는가? 지금 시중에는 “공정사회란 공무원(공직자)이 (기준을) 정한 사회”라는 풍자가 떠돌고 있는데도 청와대엔 들리지 않는가?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