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평생을 국가안보를 위해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무려 33가지 의혹을 받고 있는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군 출신답게 당당했다. 안보만 걱정하고 산 김 후보자는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바로 다음날 일본으로 온천관광을 떠났다.
이 사건은 북한이 6·25 전쟁 휴전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에 포격을 해온 중차대한 국가안보위협이다. 군인과 민간인 4명이 죽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남북관계도 일촉즉발 위기상황이었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김 후보자는 5박6일 동안 나라밖에서 온천관광을 즐기면서 국가안보를 염려하고 있었을 게다. 예비역 4성장군인 그는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국책자문위원회 국방분과위원장이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그는 그해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다음날에도 부부동반으로 충남 계룡대 군 골프장에서 한가롭게 ‘취미’를 즐겼다. 46명의 꽃다운 장병이 순직해 온 나라가 아수라장인 상태였다. 그는 정부가 정한 순직 장병 애도기간에도 여러 차례 골프로 건강을 다졌다. 그의 주장을 믿는다면 그는 골프를 치면서도 국가안보를 고민했을 것이다. 국회 국방위 안규백 의원은 “종합해 보면 김 후보자는 안보 개념이 전혀 없는 게 아닌가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그는 “(전역한) 민간인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앞뒤가 맞지 않게 둘러댔다.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자료사진>
그는 10여 차례의 부동산 투기의혹을 “딱 2개만 성공했고 대부분 손실을 봤다”고 답변해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게 했다. 30배가 넘는 시세차익을 포함해 상당액의 매각수익을 얻었음에도 “매각 후 폭등한 게 매우 가슴 아팠다”며 장삼이사처럼 굴었다. 불법사항인 위장전입도 17번을 했다. 김대중 정부시절엔 총리 내정자가 위장전입 하나 때문에 낙마했다.
김 후보자는 2년간 외국 무기 중개업체의 고문을 맡아 2억여 원의 급여를 받으며 로비스트로 활동한 의혹을 받는다. 공식 업무가 사라진 뒤에도 1년 넘게 근무를 계속하며 1억4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것(일부 부동산 거래와 위장 전입)은 있지만 나머지 일생은 청렴하게 살아왔다”고 강변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잘못한 일이 별로 없다”고도 했다. 국어사전은 ‘청렴’을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이라고 밝혀 놓았다.
17명의 각료후보 가운데 유독 김 후보자의 비리 제보가 많은 것을 보면 낙마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빼닮았다.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군내부로부터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는 건 신망이 없다는 방증이다. 김 후보자의 ‘애국적’ 항변을 보면 이동흡 후보자가 숱한 의혹과 드러난 사실에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며 “청렴 그 자체를 철칙으로 생활해 왔다”고 자평한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김 후보자의 언술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첫 각료 후보자나 고위직 내정자들이 개그 프로그램에 나올만한 언사로 불난 데 기름끼얹 듯 했던 일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박은경 환경부장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 것일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는 황당무계한 해명으로 역사에 남을 발언록을 만들었다. 이춘호 여성부장관 후보자는 오피스텔 투기의혹에 대해 “유방암 검사에서 암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라는 블랙 코미디로 서민의 심장을 후벼 팠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2억 원과 1억 원짜리 골프회원권을 “싸구려”라 말해 화를 돋웠다.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부부가 교수를 25년 했는데 30억 원 재산은 다른 사람에 비해 양반인 셈”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30억 원은 교수 부부 연봉이 5천만 원일 경우 3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돈이다.
2009년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세계 최대 모자 생산업체 회장에게서 1천만 원을 받은 사실이 쟁점으로 부각되자 “소액 용돈”이라고 해명해 한국 최고대학총장의 한심한 인식을 드러냈다.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6성급 초특급 호텔 야외에서 아들 결혼식을 치른 것을 두고 “검소하게 ‘조그만 교외’에서 치렀다”고 말해 혀를 차게 만들었다. ‘스폰서 검찰’이란 말을 낳게 한 천 후보자 청문회에서는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검사생활 24년 동안 재산이 14억, 15억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은 청렴하게 살아왔다는 증거”라고 두둔한 발언은 해외교민들 사이에서도 낯 뜨거운 화제가 될 정도였다.
2011년 7월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는 미성년자였던 두 딸에게 임야를 증여한 것에 대해 “변호사였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할아버지를 기억하라’는 취지로 준 것”이라고 해명해 공분이 들끓게 했다. 모두 안톤 슈낙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올릴 만한 것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국정철학 가운데 하나가 ‘신뢰’다. 김병관 후보자는 그런 신뢰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역대 국방장관 후보자 중 누구도 도덕적으로 심각한 무기중개업체에서 일한 경력이 없다. 역대 국방장관들의 재산 이동이나 증식 문제도 이만큼 논란의 대상이 된 실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김 후보자는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물론 군의 명예를 욕되게 할 뿐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에 분량을 약간 늘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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