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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판검사 직급의 불편한 진실

 사법시험 합격자가 발표되면 웬만한 대학교나 고등학교 교문에 경축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걸 아직도 어렵잖게 본다. 고향에선 그 옛날 과거에 급제한 것 마냥 펼침막을 내건다. 학교와 마을의 경사를 뽐내기 위해서다. 이름이 대학신문이나 동창회보에 실리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개중에는 사법연수원을 거쳐 판·검사로 임용될 성적으로 합격한 사람도 있지만, 다수의 합격자가 일자리 걱정부터 한지 오래다.

 사법연수원 수료자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판·검사로 임용되거나 로펌에 들어가지 못하면, 대기업의 상무나 부장급 대우를 받으며 당당하게 입사했다.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과장급으로 낮아지기 시작했고, 요즘엔 대리급으로 입사하는 경우도 흔하다. 아니, 일자리를 얻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플래카드를 내걸 만큼 ‘영광의 길’이 아님을 방증한다.

                                                       

                                                  <대법원청사 자료사진>

 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는 세 사람이 국민권익위원회에 6급 주무관으로 채용됐다고 해서 연수원 내부가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 판·검사로 임용될 경우 3급 부이사관 대우를 받는 사법시험 합격자가 5급 사무관 대우를 받는 행정고시 출신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 사법연수원 자치회 간부들이 ‘사시 출신을 행시 출신 사무관 아래에 두는 것은 공개적인 모욕’이라며 항의방문까지 했다고 한다. 연수원 자치광장 홈페이지에도 ‘공무원 6급 이하로는 절대로 지원하지 맙시다’라는 공지사항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지원서를 제출한 사람이 있다면 철회하고 주위에 낸 사람이 있다면 철회를 권유해 달라”는 당부의 말까지 곁들여졌다. 마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데도 아파트 부녀회에서 몇 억 원 이하로 팔지 말자고 담합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인심은 사뭇 냉정하다. 기업 평사원으로도 입사하겠다는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이 나오는 터에 연수원생들이 여전히 특권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지만, 홀로 과거의 향수만 찾고 있다며 혀 차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행정고시는 공무원을 뽑는 취직시험이고, 사법시험은 일정 수준 이상인지를 보는 자격시험인데 사시 합격자가 행시 출신보다 높은 직급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공무원으로 채용되는 변호사의 직급이 다른 부처에서도 낮아질 개연성은 높아 보인다. 로스쿨 출신을 포함해 올해 2500여명의 변호사가 배출되면서 사무관 대우를 하지 않아도 공무원에 지원하려는 변호사가 넘쳐날 전망이어서다. 여기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어김없이 작동한다.

                                                              

                                                  <대검찰청 자료사진>

 
변호사만 그런 게 아니라 판·검사도 직급이 너무 높다는 여론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현재의 직급은 군사독재시절에 높여 놓았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쓰기 위해 높은 직급과 막강한 권력을 준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시각이 상존한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 지나치게 높은 검사의 직급을 내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여론도 ‘직급인플레이션’의 하향조정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보았다. 결국 법조계의 반대로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공직의 직급도 물가처럼 한번 오르면 내리기는 어렵다는 걸 절감했다.

 당시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명한 법무부의 해명 요지는 이랬다. “검사의 준사법적 기능수행을 위해 그에 상응한 대우가 필요하다. 그런 검찰을 일반 공무원 조직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고도의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되는 업무의 대가다.” 법조계에서는 판·검사가 일종의 성직(聖職)이며 청렴의무를 요구하는 만큼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논리도 폈다.


 직급이 높아야 도덕성과 청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법조계의 논리는 오늘날 군색하게 들린다. 직급을 높여주었음에도 판·검사·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직업의 하나가 됐다. 시대의 변화에 비추어 보면 소구력이 떨어진다. 이들에 대한 특별대우가 국가 전체로 ‘인력편중현상’을 낳는 요인의 하나라는 다른 분야 수장들의 견해도 그럴듯하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판·검사의 직급도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공론화할 때가 됐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