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통념’이란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사회학자나 법학자가 아니라, 의외로 경제학자다. 걸작 ‘풍요한 사회’의 저자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1908~2006) 전 하버드대 교수다. 갤브레이스는 이 말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사회통념은 비록 진리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간단하고 편리하며 편안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게 갤브레이스의 견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면 이렇다. “우리는 진실을 편익과 연관시킨다. 진실을 이기심과 개인의 안녕, 혹은 미래와 결부시킴으로써 인생에서 자신 없는 일이나 원치 않는 일탈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경제적인 행동과 사회적인 행동은 매우 복잡하고 그 특성을 이해하는 작업은 지적으로 대단히 지루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뗏목에 매달리듯 우리의 이해를 대표하는 생각들에 매달린다.”
<나꼼수 진행자 자료 사진>
우리는 사회 일반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공통된 사고방식이나 견해를 사회통념이라 부른다. 그러면서 우리는 수많은 통념의 잣대로 현상을 재단하고, 통념을 놓고 서로 으르렁거린다. 심지어 법정에서도 사회 통념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고 판단하는 사례가 흔하다. 이 경우 관습법의 성립 여부는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되며, 다툼의 여지가 있으면 법원이 사회통념을 판단한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판결만 해도 그렇다. 그의 한 측근 인사는 “사회통념에 비춰볼 때 줘서는 안 될 돈을 줬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구사하며 벌금형 선고를 했다”며 “법적으로 그런 논리가 약간은 통할 수 있지만, 통념에 의해서만 재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나꼼수’의 ‘비키니 시위’ 논란도 사회통념에 초점이 맞춰진다. 비판하는 측이나 옹호하는 측 모두 사회통념을 들이대는 경우가 많다. 비판자들은 비키니 시위가 성희롱이며 여성을 대상화한 성차별적 표현이라고 꼬집는다. 일부 여성계와 ‘나꼼수’ 팬 중에도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비판은 사과 요구로 비약하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통념에 비춰 볼 때 실수했다고 ‘쿨’하게 사과하면 될 일을 ‘권력의 불평등’과 같은 어려운 수사학을 써가며 해명하는 모습이 실망스럽다고도 했다. 사회통념에 저항하기 위한 슬럿워크와 차이가 있으며, 1970년대 말 여성노동자들이 경찰력 투입에 저항하기 위해 옷을 벗던 일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지자들은 사회통념과 맞서 싸우기 위해 옷을 벗는 것과 사회통념에 종속되어 옷을 벗는 건 절대로 같을 수 없다는 반론으로 맞선다. 비키니 시위자들은 성희롱이 여성들의 야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회통념에 저항하기 위해서라고 공박한다. 여기엔 사회통념을 내세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도 곁들여진다. 성희롱은 권력의 불평등 관계가 전제돼야 하지만 자신들은 성희롱의 의도가 없었다고 부인한다. 비키니 사진을 올린 여성 역시 성희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만큼 성희롱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반박한다. 성적 농담 수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대범한 견해도 없지 않다.
‘나꼼수’가 활동하는 한 논란은 쉽사리 가라않지 않을 것 같다. ‘B급방송’을 자처하는 ‘나꼼수’ 측은 사과하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허물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나꼼수’ 측이 비판을 수용하고 사과해 털어버리고 가는 편이 낫다는 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하지만 ‘나꼼수’에게 자아비판을 강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위압으로 사과를 받아내는 건 의미가 없다. ‘나꼼수’ 측과 비판하는 측은 언어와 가치관의 거리감이 꽤 있어 보인다.
대신 치열한 논쟁은 더 필요하다. 건강한 논쟁을 하다보면 시간이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사회변동이 빠른 시대일수록 사회통념을 단정하는 건 더욱 곤란하다. 우리는 사회통념을 따르라는 평균적인 교육을 받고, 그걸 믿는 편이다. 그렇지만 사회통념에는 분명히 허와 실이 동시에 존재한다. 갤브레이스는 사회통념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인정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통념 대신 현실을 통찰하라고 주문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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