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문제가 변곡점이 요긴한 시점에 이르렀다.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강제북송 반대 움직임의 불씨가 나라 안팎에서 번져나갈 조짐이 보이고 있어서다. 어떤 일이든 성공궤도에 접어들기 위해선 급격하게 퍼지거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티핑 포인트’가 긴요하다.
미국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말콤 글래드웰의 책 때문에 널리 알려진 티핑 포인트는 본디 물리학에서 나온 말이다. 섭씨 99도의 물은 1도만 부족해도 끓지 못한다. 1도만 더 올라가면 물은 성격이 다른 기체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극적인 변화의 시발점이 바로 티핑 포인트다. 사회현상도 마찬가지다. 작은 변화로 말미암아 기대하기 어려웠던 일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티핑 포인트가 절실할 때가 있다.
글래드웰은 티핑 포인트에 이르는 세 가지 요소를 든다. 소수의 법칙, 고착성, 상황의 힘이 그것이다. 소수의 법칙은 영향력 있는 소수의 입소문에 의해 사회적 전염성이 널리 퍼져나간다는 견해다. 고착성은 메시지를 퍼뜨리는 사람이 중요하지만, 메시지의 내용도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상황의 힘은 주변의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제대로 전파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세 요소는 무작위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요구와 초점이 맞아야 힘을 발휘한다. 대중성이 결여되면 세 요소가 다 갖춰져도 티핑 포인트에 도달하기 어렵다.
<배우 차인표가 3월4일 오후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
콘서트 ‘크라이 위드 어스(Cry with us)’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는 소수의 정치인과 스타 연예인의 주한 중국대사관 앞 시위로 국내외의 주목도를 높이는 계기가 형성됐다. 진보언론과 진보 정치인 가운데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 나타난 것은 의미가 자못 크다. 지난 주말 당내에 탈북자 강제북송 관련 특별위원회 설치를 촉구한 민주통합당 김부겸 최고위원의 개인 논평은 그런 점에서 뜻 깊다. 김 의원의 의견이 받아들여질지 장담할 수 없지만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실린다는 것은 고무적인 변화다. 단식 시위로 불쏘시개가 된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스타성이 높은 연예인이나 진보진영의 힘이 조금 더 보태지면 금상첨화다.
일부에선 탈북자 문제가 매우 복잡한 사안이어서 신중하고 본질적인 접근이 요구된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을 이 문제와 연결 짓기도 한다.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는 분리해서 봐야 마땅하다. 탈북자 북송 문제의 본질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강제로 보내겠다’는 중국의 비인도적 정책이라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중국이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탈북자들을 강제 북송하는 속내는 정치적인 고려 때문이다. 탈북자를 허용하면 북한 주민이 대거 넘어와 북한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심모원려가 작용한다. 보편적 인권보호를 호소해 보지만, ‘탈북자는 경제문제로 국경을 넘은 월경자여서 난민으로 처리할 수 없다’는 중국의 원칙과 태도 변화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
관건은 국제여론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조짐이 보인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도 탈북자 문제를 주요 이슈로 논의한다. 여기서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를 뼈대로 한 결의문이 채택되더라도 구속력은 없겠지만 중국 입장에선 정치적으로 적잖은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다. 미국 국무장관이 사상 처음 탈북자 강제송환에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응원군이 생겼음을 상징한다.
티핑 포인트에 이르까지는 희망의 씨앗이 보이지 않을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한계상황에서 스스로 좌절하거나 주위의 반대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가 숱하다. 언젠가는 성공의 변곡점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과 그에 걸맞은 추진력이 요체다.
탈북자 문제는 지루한 마라톤과 같다.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마라톤은 숨이 넘어갈 듯한 고비를 넘어서야 완주가 가능하다. 거대한 암반도 한 방울의 물이 지속적으로 특정 지점에 떨어지면 어느 순간 결정적인 균열을 드러내고 만다. 감정 대립을 경계하면서 중국의 인도적인 선택을 다각적으로 나라 안팎에서 촉구해 나가야 한다. 시민사회와 정치권도 보다 더 적극성을 보여주는 게 도리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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