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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아름다운 죽음’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크고 작은 여운으로 남아 쉼 없이 물결친다. 유언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 남은 이의 광명을 찾아준 각막 기증. 소박한 유택. 검박했던 일상의 잔영. 거목으로서의 삶 못지않게 생애의 가장 거룩한 순간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준 인간 김수환. 그는 아름다운 죽음에 관한 사색과 성찰의 장을 열었다. “사람의 죽음 가운데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를 뽑는 것과 같이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 하면 태산보다 훨씬 더 무거운 죽음도 있다”고 한 사마천의 명언을 새삼 되새기게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미국 작가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주인공 모리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오늘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죽음을 기억하고 산다면 보다 평화롭고 베풀며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순간을 더욱 값지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다. 프란츠 카프카가 “죽음에 대한 준비는 단 하나밖에 없다.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라고 했던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이레)은 ‘어떻게 죽는가’가 삶을 의미 있게 완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숙제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말기 환자 500여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겪는 다섯 가지 단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죽음의 5단계’인 부정과 고립→분노→협상→우울→수용은 말기 환자들의 심경을 그대로 대변한다.

거의 모든 환자들이 병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첫 반응은 “그럴 리가 없어”다. 다음 단계는 “왜 하필이면 나일까?”이다. 분노, 광기, 원한이 서렸다. 세 번째는 피할 수 없는 일을 조금 미루고 싶은 일종의 협상 단계에 도달한다. “만약 하느님이 나를 데려가기로 하셨다면, 좀더 공손하게 부탁해 보면 들어주시지 않을까?”하는 상념이 드는 시기다. 네 번째 단계에는 무감각, 냉정, 분노, 흥분 같은 것들이 엄청난 상실감으로 대체된다. 마침내 죽음에 임박한 환자는 외려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주변에 대한 관심도 차츰 잃어간다.

로스의 첫 주요 저작인 이 책은 그가 ‘죽음학 전문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안내서라 해도 좋겠다.

<죽음과 죽어감>의 후속작 <인생수업>, <상실수업>,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 같은 베스트셀러들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에 관한 서구의 문화적 저항을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생수업>에서는 삶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을 정리해 준다.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그리고 배우라. 그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다.’ 간추리면 이런 정도일 것 같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을 지금 하라. 죽음은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상실수업>은 남겨진 이들을 위한 가르침,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론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즐거운 소풍으로 여기고 기쁘게 하늘로 돌아간다는 마음가짐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대부분 남의 죽음을 보고도 자신의 죽음은 모르는 척하고 산다. 이상하리만치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불가피한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면서도 낯선 사람의 죽음은 쉽게 받아들인다. 차가운 이성 때문일까. 고대 로마 군중들이 개선장군을 환호하자 한 노예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외쳤던 일화를 기억하자. 특히 작은 권력에 취한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