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3 17:33
법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겐 강하다는 사실을 거미줄과 그물에 비유한 선현들이 유독 많다. 성문법은 거미줄과 같아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감아 붙잡지만 부자와 강한 자는 그걸 쉽사리 찢고 나와 버린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나카르시스) 법률은 작은 파리만 잡는 거미집이다.(오노레 드 발자크) 법률과 경찰의 규칙은 거미줄에 비교할 수 있다. 큰 모기는 빠져나가게 두고 조그마한 모기들을 잡는다.(빌헬름 징크레프) 법의 그물은 하찮은 범죄자들만 잡도록 짜여졌다.(칼릴 지브란)
그런 가운데서도 공정 재판의 일화가 드물게나마 전해오는 것은 정의가 마냥 죽지 않았음을 확인해 준다. 19세기 초 미국 미주리 주 센트루이스 지방법원 판사였던 제임스 허킨스 페크는 특이한 습관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재판하는 동안 언제나 흰 헝겊으로 눈을 싸매고 있었다. 소송 당사자들의 얼굴을 보지 않고 공정하게 재판하기 위해서였다. 제출된 서류는 모두 법원 서기가 낭독했다.
2006년 말부터 사법연수원이 홈페이지에 띄워놓은 <사법연수생이 꼭 읽어야 할 10권의 책> 가운데 마리 자겐슈나이더의 <재판>(해냄)이 들어 있다. ‘권력과 양심의 파워게임, 세기의 재판 50’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는 지금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시위 재판 관여 사건을 직·간접으로 떠올리게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촛불시위 관련 재판에 압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소장 판사들도 이 필독서를 읽었을 게 분명하다. ‘결국 정의가 이기게 될까’라는 의문문으로 시작하는 서문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시사해 준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노예선박 영화 <아미스타드>에서 스페인 대사가 “당신은 법정을 지배하지 않고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려고 하십니까?”라고 묻는 장면은 신영철 대법관 사건을 족히 연상할 만하다. 이 물음은 법체계가 인류 역사의 도정에서 어떻게 유지돼 왔는지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기자 출신의 독일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인 지은이는 인류 역사를 축약할 만한 사건에서 다분히 의도적인 오심을 남겨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온전하게 평가받는 비극들을 타산지석으로 기록했다. 정의가 끝내 승리한 교훈적인 판결사례도 적지 않지만 세기의 재판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의와 양심보다 권력의 편에 섰음을 보여준다.
간첩 혐의를 받아 과도한 사형을 받거나 죄 없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로젠버그 부부나 무정부주의자 니콜라 사코와 바르톨로메오 반체티에게 내려진 오심은 사형제 폐지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본보기다. 특히 50년이 지난 뒤 복권된 사코·반체티 이야기는 미국 역사상 이보다 더 흥미로운 재판이 없었다는 평가와 더불어 수많은 영화, 연극, 소설, 전기, 회고록, 일기 등에 인용되고 있을 정도다. 정치적 판단에 따른 사법부의 치욕으로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이다.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타우알파에게 “기독교로 개종하면 자비를 베풀어 교수형을, 그렇지 않으면 화형을 시키겠다”는 어이없는 판결을 내린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경우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중세 유럽에서 돼지·고양이 같은 동물에게도 사람과 똑같은 절차를 거쳐 사형에 처한 ‘재판의 만행’은 마녀사냥 재판을 뛰어넘는 희극이다. 반대로 목숨을 담보 삼아 친마피아 판사들을 척결한 뒤에야 시칠리아 마피아세력을 몰아낸 조반니 팔코네 판사의 용기는 <멋진 시체>라는 영화로 승화할 만큼 숭엄하다.
저자는 ‘법은 혼자 걷지 못한다. 역사는 정의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개인들을 만나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103조를 어긴 신영철 대법관에게는 프랑스 고전작가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의 명언이 제격일 듯하다. “선량한 재판관에게 정의는 칭찬의 사랑에 지나지 않고 야심 있는 재판관의 정의는 승진의 사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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