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27 18:01:09
고승에게 한 비구니가 찾아왔다. 삶의 가장 근본적인 이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였다. 고승은 대답 대신 비구니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그러자 그녀는 놀라 소리쳤다. “스님에게 이런 속물근성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고승이 미소를 지으며 되받았다. “비구니여, 속물근성은 그대가 가지고 있네.” 숱한 일화를 남긴 조주선사(趙州禪師)의 선 이야기 가운데 한 토막이다. 지레 이상한 눈으로 짐작하려는 것을 꼬집으며 순수하지 못한 사람은 가장 순수한 것까지 추하게 여기는 법이라는 깨달음을 전하려는 의도다.
채만식의 <탁류> <산동이> 같은 작품들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속물형 인간군상에 대한 풍자와 반어가 압권이다. 특히 <산동이>에서 순천 영감 김상준은 ‘젊은 계집의 부드럽고 다스한 살’만 추구하는 속물의 대표주자다.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속물주의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가득하다.
속물주의에 대한 가장 탁월한 통찰로 자주 들먹이는 것은 프랑스 문학평론가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이론이다. 지라르는〈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한길사)에서 대다수의 욕망은 모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라르의 이론대로라면 인간의 욕망은 항상 ‘주체-중개자-대상’이라는 삼각형 구조를 갖는다. 이를테면 기사소설을 읽고 진정한 편력기사가 되기를 소망하는 돈키호테가 전설적인 기사 아마디스의 삶을 욕망하는 것과 같다.
사실 ‘속물(snob)’이라는 낱말은 정의하기 쉽지 않다. 동양과 서양에서의 쓰임새도 일치하지는 않는다. 필립 듀 퓨 클랭샹의 <스노비즘>(탐구당)은 속물과 속물주의(snobbism)에 대한 개념의 유래와 역사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준다. ‘속물’은 원래 지위가 낮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짓기 위해 이름 옆에 써두었던 라틴어 ‘시네 노빌리타테’(sine nobilitate=without nobility)에서 유래했다. 근대 이후 지배계급과 중산층 이상의 사회에서 ‘유행만 좇는 귀족’이나 ‘잘난 체 하는 어리석음과 겉치레’ 같은 부정적인 뜻으로 바뀌었다. ‘속물’이란 단어가 탄생하기까지에는 영국 작가 윌리엄 새커리의 작은 노력이 있었다. 새커리는 1829년 런던의 유명한 풍자신문 ‘펀치’에 일련의 신랄한 평론을 발표하며 오랫동안 씨름하다 ‘The Snob’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카를 마르크스가 ‘공리주의적 쾌락’을 주장한 제레미 벤담을 가리켜 ‘속물주의의 시초’라고 공공연히 비아냥거렸다는 얘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클랭샹은 르네상스가 진정한 속물근성의 출현에 적합한 모든 조건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르네상스가 육체적 자유를 주장하고 지향한 반면 종교개혁이 정신적 자유를 주장했던 상반된 움직임이 모두 속물 인간의 출현을 초래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랭샹은 속물은 집단의 일원이 되기를 원하고 속물집단은 자기도취를 목표로 한다고 진단한다. ‘속물은 항상 자신보다 더 속물과 조우한다’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그가 모든 속물근성에는 지도자와 모방자라는 두 종류의 속물이 있다고 한 것은 ‘욕망의 삼각형’ 이론과도 통한다.
펀드나 부동산 투기로 축재하며, 명품으로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고, 성형으로 형식화된 가치를 추종하는 인간군상. 여기에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가 함축하고 있는 메시지까지 ‘속물이 돼라’다. 그 걸로도 부족해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어린 새싹 때부터 겉과 속이 달라야 한다는 처세술을 가르치며 속물이 되라고 권장한다. 더욱 가관인 속물 군상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탤런트 장자연의 리스트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리스트다. ‘속물’의 반대편에는 ‘진정성’이 자리잡고 있다는데 조금씩은 속물근성을 지닌 우리는 어느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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