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에서

명성에 묻힌 지식인의 이중성

 

프랑스 리옹대학 교수이자 <지식인의 종말>의 저자인 레지 드브레는 “과거의 지식인은 시대를 명료하게 해석해 주었지만 지금의 지식인은 시대의 어둠에 어둠을 더할 뿐”이라고 탄식했다. 드브레는 오늘날 지식인이 앓고 있는 중병 다섯가지를 든다. 여전히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선도한다고 확신하는 도덕적 자아도취증,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대중과 단절된 집단 자폐증, 연구도 하지 않으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자신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을까 두려워 언론에 장단을 맞추고 설익은 견해를 유창한 언변으로 늘어놓는 순간적 임기응변증, 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 내놓는 만성적 예측 불능증. 그의 진단은 한국에 대입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게다.

어떤 이는 지식인의 특징적인 유형으로 두 가지를 꼽기도 한다. 인간적 감화를 주는 지식인과 지적 감화를 주는 지식인이다. 첫째 유형의 대표적인 인물은 베네딕트 드 스피노자다. 버트런드 러셀은 지적인 면에서 스피노자보다 탁월한 철학자가 있기는 했으나 윤리적인 면에서는 아무도 그를 따를 수 없었다고 숭앙했다. 둘째 유형의 인물로는 장 자크 루소가 손꼽힌다. 그의 사상과 철학이 프랑스 혁명에 지대하게 공헌했음은 물론 교육학과 사회학에도 번뜩이는 영감을 줬다. 반면 그의 사생활은 비난의 대상으로 손색이 없다. 그가 친자식 5명을 모두 보육원에 갖다버렸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화다.

고려대 교수인 현인택 통일부 장관의 인사청문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영국 저널리스트 폴 존슨이 쓴 <지식인의 두 얼굴>(을유문화사)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 루소의 사생활은 망나니에 가깝게 그려진다. 천재적인 지식인 루소의 인생은 온갖 비윤리적인 일로 가득하다. 여기서는 루소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러셀, 카를 마르크스, 레프 톨스토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헨릭 입센, 장 폴 사르트르, 조지 오웰, 노엄 촘스키에 이르기까지 지식인 14명의 드높은 명성에 칼날을 들이댄다. 고명한 지식인들의 이면에 감춰진 추악함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이를테면 노동자의 권리를 부르짖은 마르크스가 막상 딸의 보모에겐 죽을 때까지 단 한 닢의 동전도 주지 않았다는 이중성을 폭로한다. 톨스토이는 사창가를 드나들면서도 여성 교제가 사회악이라고 여길 만큼 비정상적 인물로 변한다. 위대한 인물들이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명망 있는 지식인들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다. 지나치게 어두운 면만 부각시킨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모든 지식인들에겐 따끔한 경종이다. 그는 단지 위인들을 폄훼하기 위해 책을 쓴 게 아니다. 지식인들에게도 그림자가 숨어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목적이다.

현인택 장관의 도덕성은 ‘종합 비리 세트’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였다. 본인은 물론 부인, 자녀들을 둘러싼 온갖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논문 중복 게재, 편법 상속 의혹, 두 자녀 위장 전입, 병역기피 의혹 등등. 더욱 심각한 것은 거짓말 의혹이다. 그러고도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임명됐다. 미국에서라면 지명 철회감이 되고도 한참 남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톰 대슐 전 상원의원에게 세금체납 논란 하나가 생기자 ‘내 탓이오’하며 철회한 것과 무척이나 대비된다.

존슨은 현 장관에게도 꼭 맞는 경구 하나를 남겼다. “자신들이 대가로 인정받는 전문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나을 것이 없는 공공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데 아무런 논리적 모순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의 예상 업무능력은 한 여당의원에게도 촌철살인 격으로 꼬집혔다. “통일 전문가로 분류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다. 냉면 잘하는 집에 찾아가 우동을 먹는 격이다.” 에즈라 파운드가 얘기했듯이 우리는 지식인들에게 최소한 보통사람 수준의 품위를 기대할 권리도 없는 걸까.

'서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력의 편에 선 재판  (0) 2009.03.13
‘아름다운 죽음’  (0) 2009.02.27
한민족 기질과 닮은 ‘소나무’  (0) 2009.02.06
민주주의 추동력 ‘다원주의’  (0) 2009.01.16
다시 읽는 세계최초 추리소설  (0) 2009.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