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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인사 여론 떠보기

1998-02-09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됐을 당시 미국의 정치여론을 주도한 언론인은 월터 리프먼과 헨리 루이스 멘켄이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였던 두 사람의 필봉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워싱턴 정가의 희비가 사뭇 엇갈릴 정도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두사람은 루스벨트를 마구 깎아내렸다. 멘켄은 당원들이 전당대회에서 「가장 약한 후보」를 애써 골라 지명했다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여론」이라는 명저와 함께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리프먼은 한술 더 떴다. 그는 루스벨트가 대통령이란 중책을 맡기엔 주요자질을 단 한가지도 갖추지 못한 「상냥한 보이스카우트 단원」같다고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런 루스벨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을 평가하고 고르는 일이 얼마나 힘들다는 걸 실감나게 보여주는 일화다.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새 정부의 청와대 참모진을 복수로 지명해 여론검증에 나선 것은 고심끝에 내놓은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언론을 통한 인사청문회」라고 불러도 괜찮을 듯하다. 이미 건국초기인 1787년부터 인사청문회 제도를 운영해 오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대통령의 직속 참모인 백악관 고위관리들은 청문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실정임에도 김당선자가 지상 청문회를 자청한 것은 「깜짝쇼」를 즐기다 죽을 쑨 전임자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때문인 것같다. 뭐든지 김영삼 대통령과 정반대로만 하면 적어도 비난만은 받지않을 수 있다는 게 통설이 돼있다시피한 실정이고 보면 김당선자의 심정은 이해가 가고 남는다.
 명단이 나오자마자 벌써부터 채점이 시작돼 지상청문회의 효력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경제수석 후보들에 대해서는 실물경제와 거리가 있고, 어떤 후보는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른 인사들에 대해서도 이익집단들이 발목을 걸고 나서기도 한다.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듯이 이 묘안에도 긍정적인 요소와 함께 부작용이 없을 리는 없다. 당사자들의 양해만 있다면 지상청문회도 활용할 만하다. 여론만 너무 믿는 인사도 문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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