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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한국형 FBI

1998-02-14 
 
 주요 선진국들은 국내와 해외 분야를 담당하는 정보기관이 거의 나누어져있다. 미국은 해외정보를 중앙정보국(CIA)이 맡고 국내업무는 연방수사국(FBI)이 관장한다. 영국은 MI6과 MI5, 프랑스는 DGSE와 DST, 독일은 BND와 Bfv가 각각 나라 밖과 안을 맡고 있다. 나라는 작지만 정보에 관한 한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이스라엘도 해외담당 모사드와 국내담당 샤바크로 분리, 운영된다. 한 정보기관이 국내외 분야를 독점하는 나라는 독재체제 아래 놓여있거나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세계적인 추세 탓인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이끌 새 정부도 미 FBI를 본떠 국내정보 전담기구를 새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이다. 이렇게 되면 안기부, 기무사, 검찰, 경찰에 흩어져있는 국내정보 수집기능을 새로운 기구에 모으고 안기부는 북한과 해외정보만 맡게 되는 셈이다. 한국형 FBI를 법무부 산하에 두려는 계획도 미국과 같다. 이는 검·경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정보권력을 분산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한 듯하다. 다만 FBI와 같은 수사권을 갖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1908년 법무부의 작은 국 가운데 하나로 출발한 FBI도 워낙 방대해져 딱히 국내정보기능만 담당하는 곳으로 보기도 어렵게 됐다. FBI는 해외지부를 2000년까지 46곳으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게다가 CIA와 FBI간의 업무협조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조정기능까지 미흡해 빌 클린턴 대통령이 두 정보기관 중견간부의 정기적인 교환근무를 의무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경쟁적인 두 기관이 해외취득정보의 공유, 외국인 첩자의 중복고용 방지를 비롯한 공조방안을 협의하느라 고심하는 흔적까지 보인다.
 러시아의 경우도 옛소련에서 악명높았던 KGB가 하던 일을 연방보안국(FSB) 등 6개 정보기관이 나눠 맡다가 보름전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런 걸 보면 국내외 정보기능의 분리가 마냥 바람직한 것만도 아니다. 한국형 FBI를 창설하더라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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