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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 칼럼> 자본주의와 지도층의 위기

1998-09-16
날씨마저 제정신을 잃어버린 요즘 우리는 나라 안팎에서 일어난 가치관의 처연한 일탈(逸脫)장면을 참담한 가슴으로 체험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입에 담기도 거북스런 세계 최강국 지도자의 성추문과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은 우리네 아버지의 비정한 모습이 그것이다.

두 사건은 가장 원초적 욕망인 성(性)과 돈의 노예가 된 인간의 벌거벗은 원형을 더없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둘은 동·서양 덕목의 동반타락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을 표상하는 근대적 시대정신인 청교도 윤리와 동양의 대표적인 철학이자 신앙인 유교정신의 몰락을 의미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두 사건은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자본주의의 위기」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공통점을 지녔다.

청교도정신은 막스 베버가 서구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으면서 찬양해 마지 않은 반면 유교가 중국의 자본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하여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서양의 최후 보루나 다름없다. 이런 청교도정신이 이를 가장 기리고 가꾸어야 할 인물의 한 사람인 미국 대통령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동양의 덕목을 타매한 베버에게 『도덕(유교)과 경제는 원래 손을 잡고 함께 걷도록 되어 있다』면서 반기를 든 일본 근대자본주의의 대부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가 지하에서 반색을 하고 벌떡 일어날 법하다.

사실 「정치와 포르노」는 유사이래 떼놓을 수 없는 쌍두마차이자 만고불변의 토픽으로 자리잡아온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은 정치와 성적(性的) 판타지에서 에너지를 충전받는다는 인터넷에 의해 세계인들에게 사이버 정치의 위력을 한층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세계 지도력의 추락을 동시에 몰고온 클린턴 대통령의 성 중독증은 「세기말 증후군」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런 클린턴이 이달 하순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등과 함께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본격적으로 찾아나서기로 예약돼 있는 것도 아이러니에 속한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의 승리를 가장 소리높이 외쳐온 미국의 지도자가 자본주의의 위기를 스스로 가중시켜 놓고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선봉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도력을 상실한 클린턴의 프로그램이 계획대로 굴러갈지 의문스럽다.

나라 안에서 한결같이 보험금을 노려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넣어 아들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아버지, 남편을 살해한 아내 등 엽기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잊을 새도 없이 나타나는 것도 유교윤리의 실종이자 자본주의의 위기가 낳은 병리현상인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돈 때문에 생겨나는 가정과 가족윤리의 파괴는 가속도가 붙은 느낌이다. 모두가 돈을 위해서는 인륜까지 배반하는 배금주의 사상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이데올로기의 만연이 낳은 치명적인 파생물이다. 하기야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적대시하며 사회주의를 풍미하게 만든 것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분석까지 있고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초래한 자본주의의 동요가 이해될 만하다. 병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가족을 거느리고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런던 특파원으로 일하던 마르크스가 끈질기게 요구한 월급인상만 해주었더라면 현대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게 케네디의 가정법적 발상이다. 결국 한국적 자본주의의 위기도 모든 것을 돈으로 연결짓고 도덕불감증을 퍼뜨린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실종에 귀책사유가 있다. 철새·해바라기·불법정치자금 수수 정치인은 그만두고라도 가장 존경받는 지도층 인사로 꼽혀왔던 대학총장의 고액 불법과외에 이르기까지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도층의 재구축이야 말로 우리사회의 급선무다. 미국인들의 불행을 동정할 정신적 여유조차 우리에겐 없다.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