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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 칼럼>'거부의 美學'

1999-08-20
이번주 신문 사회면 기사의 백미(白眉)는 단연 두 가지의 반납사건이 아닐까 싶다. 씨랜드 수련원 화재로 아들을 잃은 하키 국가대표 출신 어머니의 훈장반납과 다일복지재단의 김현철씨 기부금 5억원 반납이 그것이다.똑같은 「거부의 미학(美學)」이지만 그 성격은 사뭇 대조를 이룬다. 앞의 일이 처절한 절규가 담겨 있는 극단적 감정의 표출이라면 뒷 사건에서는 폭염 속에 내리는 한줄기 소나기 같은 시원함이 배어난다. 옥의 티를 지적하는 이들이 없지 않으나 그들의 행동이 시선을 끌기 위한 제스처나 감정의 사치는 아닌 듯하다.

그러면서도 둘 다 국가와 정치권을 향한 분노의 공개적 표현이라는 공통분모와 적잖은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 두 사례는 「향유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냉엄한 거부」를 통한 항의다.

국가대표 선수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금.은메달을 딴 공로로 훈장을 받은 김순덕씨가 이를 되돌려준 것은 국민의 생명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증오와 엄혹한 규탄이다. 오죽했으면 조국을 떠나 안전을 생명같이 여기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겠다고 했을까 연민의 정이 느껴지고 남는다. 『 전직 대통령의 아들은 중죄를 저질러도 온갖 배려를 해주면서 채 피기도 전에 비참하게 숨진 아이들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고 질타한 대목에서는 콧등이 시큰해진다.

김순덕씨는 우리 모두에게 국가와 정부의 존재이유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의문을 일깨워준 셈이다. 「천둥같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다수의 국민에겐 일정 부분의 대리만족감을 제공했다.

두 사례는 시대가 확연하게 변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한다. 따질 것은 분명히 따지는 국민의식의 변화가 어렵잖게 읽혀진다. 씨랜드 수련원 화재로 어린 생명을 「땅이 아닌 가슴」에 묻은 신세대 부모들은 과거처럼 정부의 잘못을 적당히 넘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들은 일반 국민이 모르는 눈물겨운 투쟁을 한달 이상 벌여왔다. 김종필총리 면담이 거절되자 『 총리가 골프를 칠 시간은 있으면서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을 잠깐 만날 시간은 없느냐』고 울분을 터뜨려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부는 훈장반납에 대해 여전히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도리어 김총리는 오리발로 통하는 촌지를 자민련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돌려 개혁의지 부재라며 질타하는 여론의 뭇매에 시달리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여전히 읽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의 관용」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나만의 성역」을 고집하는 지도자들의 행태가 지속되는 한 깨어 있는 국민들의 「위대한 거부」는 앞으로도 줄을 이을 것이다.

다일복지재단의 경우 비록 완곡하게 해명내용을 담았지만 국정을 농단하며 거액의 부정한 돈을 받은 김현철씨에 대한 강력한 거부 메시지를 던졌다. 나아가 그를 정략적으로 사면한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불만까지 은근히 덧붙이고 있다. 그렇다고 김현철씨의 돈을 받은 단체를 탓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빈민들을 위한 집을 짓는 다일복지재단은 오히려 김현철씨의 돈보다 몸을 파는 여성들의 돈을 더 값지게 여기고 있을 정도다. 「아름다운 거부」에 수많은 시민과 네티즌들로부터 쏟아지는 격려가 함축하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내년 총선이나 의식하는 과대포장의 개혁프로그램 남발에 그칠 뿐 앵돌아진 국민의 마음을 진정으로 치유하는 반부패.개혁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국민의 더 큰 거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공적 1호인 부패의 척결이 선언이나 제도적 장치만으로 이뤄질 성질의 것이라면 오늘날까지 골치를 썩일 현안이 아니다.

대통령이 앞으로 사법부가 단죄한 부패 정치꾼들에 대한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실천적 의지 하나만 제대로 지키더라도 몰라볼 만큼 진전이 올 게 틀림없다.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