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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政爭만 흐르는 '슬픈 역사'

2001-02-21
미국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과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은 흥미로운 공통점이 많다. 양념같은 화젯거리는 두 사람 모두 돈많은 과부와 결혼한 사실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부인들의 이름이 마사인 것도 재미있다. 워싱턴의 부인은 마사 커티스, 제퍼슨의 아내는 마사 스켈턴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로 일컬어지는 이들의 빼놓을 수 없는 공통분모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오늘을 있게 한 선견지명이다. 땅에 대한 집념이 누구보다 강했던 이들의 웅지명략(雄志明略)과 슬기는 후세 사람들이 비로소 평가한다. 이들에게서 몇가지 도덕적 흠집이 드러나고 있지만 치적을 결정적으로 뒤엎을 정도는 아닌 듯하다.워싱턴은 미국의 영토를 넓혀간 선구적인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기회만 닿으면 땅을 사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이런 습관은 평생동안 지속되어 훗날 그 일대에서 최대의 부동산 소유주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 땅이 개인소유로 계속 남아 있지 않았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제퍼슨은 루이지애나로 불리던 미국 중부 일대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땅을 몽땅 헐값에 사들인 것 하나만으로도 어떤 대통령이 이룬 업적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고 역사학자들은 평가한다. 루이지애나는 당시엔 프랑스가 별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땅이었다.

이들뿐 아니라 앤드루 존슨 17대 대통령 때 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시워드는 알래스카를 사들인 인물로 회자(膾炙)되고 있다. 알래스카는 러시아가 두고두고 후회하는 전략요충지이자 자원의 보고(寶庫)다. 시워드는 의회와 정부 안팎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알래스카 매입을 끝까지 주장했다. 그는 알래스카에 그치지 않고 도미니카 열도의 매입까지 역설하다가 거센 여론의 화살 때문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에게 후보자리를 빼앗기는 불운을 맛보아야 했다. 이 일화는 영어사전의 고사성어까지 만들어낸다. '시워드의 어리석음'(Seward's Folly)이라는 말은 이제 당대에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나 훗날 거시적 안목으로 재평가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미국은 원주민이나 멕시코 등과 싸워 영토를 넓힌 사실 때문에 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처럼 돈을 주고 국토를 확장한 사례가 적지 않다.

다소 다른 경우지만 우리 이웃에 있는 일본인들은 제임스 쿡이 이끈 영국인들보다 무려 400년이 앞선 1,300년대에 이미 망망대해를 건너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탐험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 역시 18세기에 오스트레일리아 땅을 밟은 흔적이 남아 있다니 우리에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당쟁으로 날을 지새우다 수많은 외침(外侵)을 당하고도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는 허울좋은 자존심만 내세우던 우리 조상들과 비교하면 때론 허탈감마저 느껴진다.

시계를 오늘의 한국으로 돌려 보자. 새해 들어서도 국민과 나라의 장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차기 정권다툼으로 영일(寧日)이 없는 정치권과 당파싸움만 하던 조선시대 지도층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국민의 기억 속에는 단 하루라도 앞날을 걱정하거나 생산적인 발상을 하는 지도자와 정치인이 있었는지 그저 아련할 뿐이다. 관혼상제의 사소한 형식을 둘러싸고도 피를 부르는 싸움박질을 하던 조선시대와 같은 소모전이 내년 대선 때까지 계속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게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지하철 민심 탐방 현장이 연출이네 아니네 하며 외국인들까지 웃긴 어린아이 말꼬리잡기싸움 같은 일들이 어제도 벌어졌고 오늘도 내일도 일어날 게 뻔하다.

급기야 모든 정치인들에게 몇개월씩 세계 배낭여행을 의무화하면 어떨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세상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 강제로라도 느끼고 오면 소아병이 조금은 고쳐지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 상상을 비약시킨 것같다. 그럴 경우 당연히 해외공관과 수행원이 온갖 뒷바라지를 해주는 외유(外遊)가 아니라 혼자서 비행기표와 기차표를 사고 걸어 보기도 하는 체험여행이어야 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세상이 다 아는 중국의 상전벽해(桑田碧海)에 새삼스레 화들짝 놀랐듯이 시대를 거꾸로 사는 우리 정치인들이 그런 시늉이라도 낸다면 천만다행이리라.

김학순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