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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전략적 모호성'의 가치

2001-06-13
요즘 시중에는 한때 떠돌았던 개그성 수수께끼가 다시 나돈다. '애매모호'를 각 나라말로 뭐라고 하느냐는 물음이 그것이다. 점잖은 자리에선 다소 머쓱할지도 모르는 인터넷 '깔깔방' 수준의 정답은 이렇다. 일본어로는 '아리까리', 프랑스어로는 '아르송다르송', 중국어로는 '갸우뚱', 아프리카말로는 '알간디모르간디'다. 마지막 순서의 독일어로는 '애매모흐'다. 중요한 것은 이런 우스개 수수께끼의 등장 배경이다. 하나의 설(說)은 올들어 부쩍 관심을 모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국제정치학 개념에 기초한다. 전략적 모호성은 최근 외교 무대에서는 물론 국내정치에서도 남용되는 느낌마저 준다. 일반인들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연초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사일방어(MD)체제의 전신인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구축을 선언하면서부터다. 우리 정부가 미사일방어 체제 구축을 강행하려는 미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북한.중국.러시아 등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어느 쪽으로부터도 반발을 사지 않는 실익을 챙기려는 전략이 그것이다.이렇듯 전략적 모호성은 '뜨거운 감자'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전략 개념의 하나다. 미국은 1979년 의회에서 대만관계법이 통과된 이후 대(對)중국정책에서 전략적 모호성의 원칙을 줄곧 견지해 왔다. 탈냉전 이후 주한미군에 대한 중국의 시각도 전략적 모호성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 중국은 원칙적으로 미군철수론을 세워 놓았지만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지켜오고 있다. 북한이 핵문제가 불거지자 모호성의 전략을 교과서적으로 구사해 미국으로부터 경수로건설.중유공급과 같은 알찬 과실을 따내며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사례는 학술논문 주제가 되기도 했다. 이 전략방정식은 '명료성이 항상 선(善)은 아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미묘한 현안에 대해서는 그같은 전략적 모호성을 무기로 삼는 게 유용하고 현명한 전략일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국내정치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선용(善用)의 차원을 넘어설 때가 잦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상선이 우리 영해를 침범해 항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알 듯 모를 듯한 한마디만 내각에 던졌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국민과 북한 당국을 모두 의식해 애매모호한 비답을 내린 것이다.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정풍운동이 일어나자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쇄신방안을 밝히겠다던 김대통령이 가뭄을 이유로 무기연기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에 속한다.

김대통령은 연초에도 획기적인 국정쇄신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으나 '강한 정부, 강한 여당론'을 들고 나오면서 애매모호하게 넘어가고 말았다. 공동여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가 가위 전략적 모호성 정치의 귀재에 가깝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이 분야에 관한 한 노태우 전대통령에 버금가라면 서러워할지도 모른다. 가뭄을 핑계로 국가보안법 토론회를 연기한 한나라당 역시 예민한 현안은 입에 담지 않는 게 최상책이라는 전략적 모호성 논리에 함몰돼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 새만금사업, 모성보호법 등에 대해서도 엉거주춤한 채 명확한 입장표명을 꺼리고 있다. 사실상 대선 가도에 접어든 정치권은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하자 예민한 사안은 세월에 해법을 맡기는 듯하다.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전략적 모호성은 더욱 극성을 부릴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탈리아.영국 등 유럽국가들의 최근 총선에서도 주효했던 전략적 모호성이 만병통치약은 결코 아니다. 정치불신을 낳는 주범 가운데 하나가 전략적 모호성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국내정치에서의 전략적 모호성은 정치철학이라기보다 득표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정치는 정책대결이 아닌 지도자나 정당의 이미지 경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의도된 모호성이 도덕적 모호성으로 발전하면 지도자들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보다 전략적 모호성 남용의 폐해가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돌아오고 만다는 비극성이 더 크게 부각돼야 한다. 김학순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