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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 도라산역과 主敵논란

2002-04-15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 이 감회어린 문구는 심장의 박동 속도를 높여주는 도라산역(都羅山驛)을 표징한다. 한.미 정상이 지난 2월20일 북한측에 지속적인 대화와 화해를 촉구했던 이 역사적인 장소는 지난 11일 정식으로 개통돼 일반인들에게 갓 선보였지만 더이상 한반도만의 공간은 아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다녀간 데 이어 앞으로도 외국의 수많은 저명인사들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을 분단과 통일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개통 3일째이던 지난 주말 중견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이 주관한 답사행사 일환으로 이곳을 방문했던 회원들과 그 가족들도 더이상 북쪽으로 달리지 못하는 열차에서 내려야 하는 안타까움과 멀지 않아 경의선이 완전하게 개통돼 시베리아와 유럽 횡단으로 이어지길 고대하는 소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맛보아야 했다. 답사객들은 나머지 철로부설용 콘크리트 침목에 경의선 연결의 염원을 서명으로 담아 남기기도 했다. 거기엔 진보냐 보수냐는 논란이 끼여들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고려에 귀부한 신라 경순왕이 서라벌쪽을 바라보며 울었다는 전설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도라산 꼭대기의 전망대에서 북한땅을 관찰하면서는 다소 다른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최전방 장병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경계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최근 정치권의 논쟁거리 가운데 하나였던 북한에 대한 주적(主敵) 개념이 일방적으로 철회되어서는 안된다는 견해와 남북화해시대에는 냉전적인 사고에 머물러선 곤란하다는 주장이 여기서도 엇갈렸다.

북한의 주적론 철회 요구는 최근 임동원 대통령 특사의 방북때 북측에서 제기한 가장 어려운 쟁점 중 하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측의 이런 요구는 사실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에서도 남측을 압박하는 카드의 하나로 주적론 철폐를 촉구했으며 이에 관한 문제제기는 지난해도 몇차례나 더 있었다. 북한측이 주적 개념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남측이 94년 국방백서에서 삭제했다가 이듬해부터 다시 명시한 뒤부터다. 북측은 심각한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끼리라도 상대국을 공식적인 국방문서상에 주적으로 명시하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국방부는 "북한이 지금의 대남군사전략을 수정하지 않는 한 주적개념을 변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기존답안'에서 별다른 변화를 모색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더구나 올해 양대 주요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국민의 정부'도 앞장서서 긁어 부스럼을 내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첨예한 선거쟁점으로 떠오른다면 이보다 '뜨거운 감자'를 찾기 어려울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주적론 철폐문제를 둘러싼 공방은 여야간에는 물론 여당 내부 경선과정에서도 향후 여러 차례 격돌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여기서 유의해야할 점은 당장 주적개념 철폐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정을 북한측에 설득하되 남측 내부에서 소모적인 논란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북한에 대한 발언은 완곡하고 신중할수록 바람직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적대적인 세력'이나 '나라 안팎의 위협세력'과 같은 완곡어법을 사용하면서 방위능력을 높일 수 있는 제3의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지혜를 빌리면 어떨까 싶다. 수많은 명언을 남긴 링컨은 원수를 없애는 법에 관해 무릎을 치게 하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는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한 연설에서 남부 미국인들을 가리켜 "잠시 실수를 하고 있는 동포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자 한 나이든 북부출신 부인이 "왜 그들을 죽여 없애야 하는, 화해할 수 없는 원수라고 부르지 않으세요"하고 책망하듯 따졌다.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부인, 원수를 친구로 만들면 원수는 자동적으로 죽게 되는 것 아닙니까"
김학순/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