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02 |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CNN 본사에는 '전설적인 종군기자' 피터 아네트가 1991년 걸프전 때 바그다드에서 입었던 점퍼와 화염에 그슬린 모자가 신주 모시듯 전시돼 있다. 시청자들이 CNN 하면 걸프전과 아네트를 먼저 떠올리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이전까지 1%에 불과하던 CNN의 시청률이 걸프전을 통해 무려 11%로 껑충 뛰어 대박을 터뜨렸고 그 한복판에 아네트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걸프전 당시 아네트가 기사를 보내던 알 라시드 호텔까지도 세계적인 명물이 돼 있다. 로비에는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의 아버지 얼굴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어 이곳에 묵는 사람은 누구나 그 얼굴을 밟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다. 일흔을 바라보는 아네트(68)는 거의 한평생을 전장에서 살았다. 60년대 베트남전에서 이라크전쟁에 이르기까지 분쟁지역에는 으레 그가 없으면 무효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하고 있을 정도다. 언젠가 그는 이런 말로 직업정신을 대신했다. "전쟁 보도는 나의 인생이며, 나는 전쟁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완전히 몰입할 뿐 어떤 위협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일이 없다" 그가 가는 곳마다 언론과 국익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그가 퓰리처상을 받았던 베트남전 보도가 미국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걸프전 때도 이라크 선전기자냐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이라크전에서도 어김이 없었다. 그는 이라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작전실패를 꼬집었다는 이유로 국내여론에 밀려 소속회사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다행히 해고 하루 만에 반이라크전을 표방하는 영국 신문이 그를 특채해 전장을 떠나지 않게 됐다. 국가기밀을 누설하지도 않은 기자에게 해고라는 마지막 카드를 뽑은 미국의 분위기가 '슬픈 열대'처럼 다가오는 요즘이다. 애국심과 기자정신은 영원히 충돌하기 쉬운 고전적 논쟁거리지만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사명인 비판적 보도와 국민의 알권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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