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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아침을 열며> 일류정부로 가는길

2004-11-03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서 '일류정부' '최고 수준' 같은 낱말을 들어보는 것은 오랜만인 듯하다. 경쟁을 연상하는 이런 단어는 참여정부와 낯가림을 하는 경향이 많아서다. 그래선지 노대통령도 "최고라는 표현이 거북할 수 있다"고 한자락을 깔았다. 당연히 경쟁제일주의, 승자독식주의적 관점이 아님을 부연했다. 노대통령이 '일류정부' 같은 용어를 동원하는 것은 주로 고위공직자들과의 모임이 있을 때다. 이번에도 지난 주말 열린 장.차관 정부혁신토론회가 열린 자리에서였다.공공서비스 만족 50점그쳐 어쨌든 "다른 나라 정부와 비교해서 과연 최고 수준이냐. 기업과 비교해서 우리 정부의 일하는 수준이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대통령의 반문성 언술을 고깝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최고 수준의 대국민 서비스' 같은 얘기도 '립서비스'로만 치부할 게 아니다. 대통령이 자주 되뇔수록 반복 효과가 적지 않은 말임에 분명하다.

사실 정부혁신과제 가운데 경쟁력과 대국민 서비스는 두 개의 수레바퀴 같다. 정부가 국민을 고객으로 보는 개념은 미국의 데이비드 오스본과 테드 게블러가 세계 각국으로 전파한 것이나 다름없다. 두 사람이 1992년 함께 쓴 '정부혁신의 길'이라는 책은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행정개혁 교과서로 쓰였다. 참여정부의 학자 출신 고위공직자들에게도 이 책은 빼놓을 수 없는 참고서다.

'정부혁신의 길'은 고객지향적 정부가 국민에게 최고.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당위를 뼈대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도 시장원리를 적극 도입하여 규정과 절차보다는 사명과 결과를 중시할 것을 주문한다. 오스본과 게블러는 끔찍한 예화를 든다. "가장 기업가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도 공공사업기구, 특히 정부기구의 운영을 맡고 나서 6개월만 지나면 그저 눈치나 보거나 자리보전에 급급하며 권력에 굶주린 정치인처럼 행동하게 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치고문 딕 모리스도 혀를 내두르며 한 이야기가 있다. "민주주의 정부의 행정관료조직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오직 하나의 임무에 전념하고 있다. 좌익이나 우익이나 다를 바 없으며,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아니다. 그들은 현재 그대로를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공직자들은 고객인 국민에대한 최선의 봉사 자세가 충일한가. 여러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우리나라의 공공서비스 만족도는 50점대에 머무르고 있다. 60점대 후반인 미국에 비해서는 물론 60점대 중반인 한국 민간 부문의 80% 수준에 불과하다.

최근 행정자치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민원부서 공무원들 간의 근무시간 마찰은 대국민 서비스의 또다른 리트머스 시험지다. 전국공무원노조가 노동3권 보장을 둘러싸고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세계 각국의 사례에 비춰 보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전공노가 점심시간 교대근무조차 거부하는 것은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경제난과 짜증스런 일들만 많은 시기와 겹쳐 동정여론을 얻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다. 더구나 은행이나 사기업의 경우 최소한 민원부서 담당자들은 점심시간 서비스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정부개혁 고강도 추진 필요 정부 부문의 경쟁력은 국가 전체 경쟁력과 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공신력있는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까지 나서 역설한다. 하지만 세계 12위의 경제력을 지닌 한국의 정부 부문 경쟁력은 세계 25위권 안팎이다. 정부개혁이 강도 높고 중단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은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정부개혁과정에서 경쟁력이라는 말이 기피단어처럼 여겨져선 곤란하다. 안성맞춤 같은 조어인 나토(No Action Talk Only.말만 하고 행동은 없다) 정부로 흘러가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부터 일류가 된다면 일류정부로 가는 길은 금상첨화일 것이다.

김학순 미디어칸 대표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