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7-28 |
스페인 영화 '까마귀 기르기'(원제 Cria Cuervos)는 프랑코 독재의 잔영을 그린 명작으로 꼽힌다. 이 영화는 한 부르주아 가정의 삶을 통해 프랑코 시대가 스페인 사회에 드리운 상흔을 오묘하게 교직해 냈다.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이 1976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을 만큼 주목도가 높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독재를 상징하는 아버지의 죄는 물론 이모의 위압적 태도까지 심판하려는 주인공 아나의 행동은 스페인의 새로운 세대가 프랑코를 죽이고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는 '신원(伸寃)의 알레고리'라는 평판을 얻는다.요즘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인 과거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을 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다른 한편으론 지난날 리영희 선생의 마음을 괴롭혀왔다는 중국 작가 루쉰(魯迅)의 말을 회상하게 만든다. "빛도 공기도 들어오지 않는 단단한 방 속에 갇혀서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벽에 구멍을 뚫어 밝은 빛과 맑은 공기를 넣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중략) 그런 사람에게 진실을 보는 시력과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되살려줄 신선한 공기를 주는 것은 차라리 죄악이 아닐까? 결코 죄악일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 진실찾기란 오히려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그리하여 밝고 희망찬 미래를 일궈가기 위한 첫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성역없는 진상규명 필수 과거의 진실찾기가 민족의 정체성을 되살리는 최소한의 통과의례임에도 일부 현안들이 정체성 논란으로까지 비등하고 있는 것은 비극을 넘어 소극(笑劇)으로 비친다. 건국 이후 친일청산을 비롯해 제대로 된 역사정리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한탄스러운 일이다. 그 폐해는 친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은 매국노의 후손이 거액의 부동산을 되찾겠다는 소송을 제기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로 표출되고 있다. 심지어 올해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명백한 친일파의 후손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가 사후에 들통이 난 어처구니없는 소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지경이다. 성역없는 진실규명의 원칙과 의지는 결코 꺾여선 안된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이 몇 해 전 정리했던 '친일청산반대론자들의 10가지 궤변'에는 단호히 맞서야 한다. 친일청산은 빨갱이에 가깝다는 색깔론, 지나치게 매도하지 말자는 공과론(功過論), 친일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공범론(共犯論), 과거를 잊자는 망각론, 권력의 강제력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범부(凡夫) 피해론, 어쩔 수 없었다는 직분충실론, 선각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난이라는 순교자론, 죄없는 후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는 연좌제 부활론, 국력낭비라는 국론분열론, 특정 정치인 모략이라는 정치적 음해론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핑곗거리들이다. 다만 저항세력 아닌 일반 국민들의 피로감까지 낳는 무리수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외려 생산성을 높이지 않을까 싶다. 정부와 여당의 전선(戰線)이 너무 여러 군데로 확대돼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방법론으로서 적절한지 재검토가 요구된다. 시간차 공격 같은 방안도 생각해 볼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100년이 넘은 동학혁명까지 과거청산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도 숙고할 여지가 있다. 전술.전략적 판단 긴요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얻으려다 당연히 얻을 수 있는 몫까지 놓치거나 또 다른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정법보다 무섭다는 국민정서법은 지금 민생 우선이나 최소한 병행을 희구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원칙을 손괴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의 전술.전략적 탄력성이 때론 긴요하다. 국민적 지지가 높을수록 과거청산의 효과는 크고, 보다 나은 미래를 기약한다. 김학순 본사 미디어전략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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