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14 |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란 개와 원숭이 사이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요즘 일본을 보면서 또 한번 절감한다. 꽃샘추위 속이라 일본으로부터 날아오는 체감 한기는 뼛속 깊은 곳까지 시리게 한다. 잠잠하다 싶으면 어느새 검푸른 파고를 몰고 오는 대한해협(현해탄)이 상징하듯 한국과 일본의 특수관계는 숙명처럼 다가온다. ◇韓성장 견제하는 계산된 술수 한류(韓流)를 타고 한겨울에도 봄바람이 감지되는 듯하던 한국과 일본 관계는 새해 들어 독도를 둘러싸고 다시 난기류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상서롭지 못한 바람은 어쭙잖은 한국 지식인의 친일 망발과 몇몇 지원사격 세력으로 한국민들의 복장을 내지른다. 곧 이은 일본 교과서 왜곡 소식이 기름을 끼얹어 순식간에 거대한 산불로 비화됐다. 수교 40주년을 기념하는 '한.일 우정의 해'는 차라리 없는 게 마음의 생채기라도 덜어줄 것만 같다. 봄소식과 함께 온 난기류는 단순히 일본 극우세력의 준동으로 돌려버리기엔 조짐이 심상치 않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그렇고, 심지어 양심적인 언론으로 값매김하는 신문사까지 여기에 가세한 것이 그렇다. 불법으로 독도 촬영을 기도했던 경비행기는 바로 진보언론을 자처하는 아사히신문 소속이었던 데서 충격파가 더욱 크다. 후소샤(扶桑社)가 만든 일본 중학교용 공민 교과서에 추가된 '조선의 근대화를 도운 일본' 등은 때맞춰 사려깊지 못한 우리 내부 지식인이 정당성을 부여해준 모양새가 되고 말아 뒷맛이 한결 씁쓸하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는 오히려 행운이고 축복할 일이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한 나이든 철부지 지식인의 주장과 일본 교과서의 언술은 너무나 흡사하다. 서울 한복판에서까지 일본 정부의 대사가 독도영유권을 서슴없이 주장하는 지경에 이른 데는 그들의 노림수가 배어나온다. 2001년 한국 정부가 문제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 왜곡 파문으로 주일 한국대사를 소환했던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구임를 핑계 삼지만 사실상 이들을 앞장세우고 있음이 곁눈으로 보인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들먹이지만 속과 겉이 다른 일본 특유의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정신'은 한국 정부를 시험대에 올려 놓으려는 속셈이 엮여 있다. 북한과의 불편한 관계,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한.미 동맹관계의 전환기 같은 틈새를 노려 한국의 성장을 견제해 보려는 노골적인 복심이 아닌가 싶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미.일 동맹 밀월과 때를 같이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한 보고서로 한국인의 마음을 뒤틀리게 만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한류를 잠재우려는 일본의 계산된 우회적 도발이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는 국가라면 바로 이웃한 나라들만이라도 자기 편으로 삼으려는 땀샘쯤은 보여주는 게 국제상식이지만 옆길로 가는 속내엔 또 다른 계산이 있을 법하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비수를 숨기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의 속내를 탐사해 볼 때다. 이번엔 한국 정부의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따른 파장을 낮춰보려는 맞불작전까지 숨어 있다는 느낌도 준다. ◇앙숙 獨.佛 공동교과서 부러워 때마침 들려온 유럽쪽 소식은 부러움을 더해준다. 유럽 앙숙이던 독일과 프랑스는 고교 교과서를 공동제작하기로 최종합의를 이루었다는 보도가 지난 주말 전해졌다. 이웃 사이의 특성이라는 애증 교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미움보다 사랑이 많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닌 선진국의 도량이다. 상대적 약자인 한국 입장에서는 지난날 그랬듯이 늘 공격을 당한 뒤 방어만 하는 쪽이라는 데 안타까움이 커진다. 일본은 가까이 하면서 한시라도 긴장을 늦추어선 안될 상대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해진 이상 온건론은 어디에도 설 땅을 잃고 만다. 상대가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만들 땐 그때마다 답만 들이댈 게 아니라 답과 함께 다른 문제를 덧붙여 던져 주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선의는 선의를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에게만 통한다. 김학순 미디어칸 대표 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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