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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로봇 과외

2005-10-04
재야 철학자로 불리는 이진경의 책 '철학의 모험'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는 로봇을 만들려면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고, 인식하는지를 알아야 했던 거지요. 그 때문에 큰 실험을 두 번 했는데 한 번은 데카르트의 모델에 따라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저희들 중에는 데카르트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주도해서 인간이 사고하는 법칙인 논리 규칙을 기계의 머리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데카르트와 달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거예요. 새로운 정보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정보를 잔뜩 입력해 보았죠. 그러나 이 놈은 '이 자료를 믿을 수 없음' 같은 대답만 내놓는 거예요. 확실한 건 오직 자기가 사고하고 있다는 점뿐이라나요?"
"데카르트를 꼭 닮은 기계였군!"
"화가 나서 그 놈을 부숴버렸습니다. 다음엔 로크의 경험주의 모델에 따라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데카르트의 모델과는 반대로 계산장치는 백지로 남겨 두고 온갖 정보와 자료를 잔뜩 입력해 주었지요. 하지만 새로 판단하는 일을 전혀 못하는 거예요."
"정말 재미있군! 그 기계는 백지가 아니라 백치였군."
대철학자들의 특성을 흥미롭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으면서 로봇의 한계도 지적하려는 함의가 있는 예화다.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수준에 가까운 로봇을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의지는 끝을 알기 어려울 만큼 끈질기다. 이제 '로봇 선생님'이 말도 많은 과외를 맡는 일이 올해 안에 시범을 보인다고 한다.

로봇 과외는 방송과 컴퓨터를 이용한 과외교육이 일방통행일 수밖에 없는 단점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특장을 가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로봇의 가장 탁월한 기능이 인간과의 상호작용기술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잘만 활용하면 학생의 수업태도, 수학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 학습진도관리, 숙제검사까지 어렵잖게 해낼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불과 1백만원 정도의 로봇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교육으로까지 승화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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