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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앨버트로스

입력 : 2006-06-06 18:15:40

씨알 사상을 주창한 함석헌은 ‘바보새’를 자처했다. 그는 스승인 남강 이승훈에게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을 정도다. “선생님, 저는 신천옹(信天翁)이라는 바보새가 좋습니다. 신천옹이라 이름한 이유는 이 놈이 날기는 잘해 태평양의 제왕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고기를 잡을 줄 몰라서 갈매기란 놈이 잡아먹다 이따금 흘리는 것을 얻어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새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보새라는 이름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가 사는 꼴도 바보새 같다 할 수 있습니다.”

바보새는 나는 새 중에선 따를 자가 없을 만큼 커 ‘전설의 새’로 불리는 앨버트로스의 별명이다. 앨버트로스의 이런 별명은 무료한 선원들이 놀림감 삼아 붙여준 것이다. 90㎏가량의 거구와 2~3m에 달하는 큰 날개 때문에 걷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데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온순함 때문에 남태평양 선원들은 바보갈매기라 부르곤 한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도 자신의 운명을 지상에 유배되어 조롱의 대상이 돼버린 앨버트로스에 빗대 노래했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거대한 앨버트로스를 붙잡는다/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옛적에는 앨버트로스를 죽이면 운이 나쁘다고 하여 선원들이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선원들은 오랜 뱃길에서 주린 배를 앨버트로스로 채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앨버트로스의 발 물갈퀴로는 담배쌈지를 만들고 속이 빈 긴 뼈는 담뱃대로 즐기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털까지 필요하다며 번식지를 습격하고 마구 잡아들이는 바람에 앨버트로스는 멸종위기에 처했다. 1962년 국제보호조로 지정됐으나 남태평양의 앨버트로스는 어민들의 등쌀에 남아나지 않을 지경이라는 소식이다.

골퍼들은 한 홀에서 기준타보다 3타를 적게 치는 앨버트로스를 기록하면 행운이 깃든다며 뛸 듯이 좋아하지만 앨버트로스의 운명은 종족보존조차 걱정하는 신세가 되고 있다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기뻐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바보가 아닐까.

〈김학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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