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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김학순 칼럼] ‘물폭탄’ 맞은 한나라당

입력 : 2006-07-25 18:19:36

나라와 물은 자주 같은 반열에 놓이곤 한다. 사람들이 일찍부터 물을 나라처럼 다스리는 것(治水)으로 인식할 만큼 무겁게 여겼기 때문이리라. 거기에 그치지 않고 무섭게 받아들였다. 하나같이 거대한 강을 끼고 있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에서는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저수지와 운하를 만드는 치수사업이야말로 최우선·최대 과제였음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나라의 지도자와 목민관에게 주는 물의 첫번째 교훈은 바로 치수의 긴요성이 동서와 고금을 따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국 최초 왕조로 알려진 하(夏)나라의 시조 우(禹) 왕도 치수의 전설로 시작된다. 우왕은 아버지 곤이 9년간이나 황허(黃河)의 홍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 채 벌을 받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를 너무나 가슴아프게 생각한 그는 13년간이나 찬 이슬을 맞으며 지냈다. 전설의 감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동안 세차례나 자기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집에 들르지 못하고 일했다고 한다. 자기 한 몸의 고달픔으로 천하의 백성을 평안케 하려는 대의가 담긴 것이다. 우가 언제나 검약한 돈으로 치수에 힘쓰자 갸륵한 마음을 알게 된 순임금이 자리를 넘겨 줘 하왕조가 탄생하게 됐다는 얘기가 아득히 전해 내려온다. 과장됐을 게 틀림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치수가 나라의 근본이자 최대 난제였음을 강조하는 방증이다.

-‘수해에 골프’ 오만한 지방권력-

오늘이라고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최근의 엄청난 호우 피해는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 부쩍 도마에 오르고 있는 난개발에 가장 많은 화살이 날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치수 개념의 결핍이나 부재에서 초래된 것이다. 오로지 편리함과 돈만 추구하는 개발과 건설에 정신이 팔려 자연의 복수를 잊어버린 결과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 눈에 보이는 실적에 급급하다 공든 탑이 하루 저녁 사이에 사라져 버리는 어리석음을 사후에야 절감하게 된 것이다. 갖은 생색을 내며 돈은 돈대로 들였지만 원망만 듣는 꼴이 되고 말았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하늘의 경고장은 어김없이 배달된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는 더 말할 것 없고 연이어 지방정부 권력을 독과점해 온 한나라당의 목민관들이 뼈아프게 새겨야할 계율이다.

그에 못지 않게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물의 가르침은 물과 배(舟)의 상관관계이다. 순자(荀子)가 배는 군주, 물은 백성에 비유한 금언이 그것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계고(戒告)는 ‘정관의 치’(貞觀之治)로 숭앙받는 당태종이 태자 이치(李治)를 가르칠 때도 가장 역설한 대목으로 유명하다.

이 계율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지방권력을 싹쓸이하다시피한 한나라당에 당장 직결된다. 수많은 목숨에다 삶의 보금자리를 앗아간 물난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골프를 즐긴 한나라당 경기도당 간부들과 음주가무판을 벌이거나 외유를 떠난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행태를 목도한 ‘민심으로서의 물’은 배를 당장이라도 뒤집을 태세다. 한나라당 전체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집중호우의 최대 피해 고장인 정선의 골프장에서 희희낙락하는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중앙당 지도부의 사전 경고조차 나몰라라 한 정치감각으로는 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당 지지도가 한꺼번에 10%포인트 이상 추락했다는 보도가 거증하고 남는다.

-민심의 경고 뼈아프게 새겨야-

나름대로 신속한 중징계를 내리는 대증요법을 썼지만 오만을 두 눈으로 본 ‘국민이라는 이름의 물’은 증오의 눈길을 쉽게 거두려 들지 않을 게다. 언제든지 다시 배를 전복시킬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언제부턴가 ‘집권야당’이란 비아냥 섞인 별칭이 붙어버린 한나라당이지만 지방정부를 대부분 장악한 정당이 적어도 지역행정에서만은 집권여당의 자세로 일하지 않으면 ‘물의 분노’는 한결 빨리 찾아올 개연성이 높다. 주민소환제라는 새로운 무기가 예비돼 있어서다.

‘물폭탄의 치명적인 파편’을 가장 많이 뒤집어쓴 지금의 한나라당에 꼭 필요한 말은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의 경구이다. “역사적인 성공의 절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고, 역사 속 실패의 절반은 찬란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되었다.” 한나라당이 단순히 재·보선 대책 차원을 뛰어넘는 처절한 대혁신이 지금부터 절실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