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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수소 자동차

입력 : 2006-08-06 18:14:45

2003년 6월 유럽연합(EU)은 이번 세기 중반까지 청정 수소경제체제를 확립하겠다는 담대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은 이를 미국의 아폴로 우주계획에 비유할 정도였다. 그러자 미국 산업계는 자신들도 유사한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유럽에 결정적으로 뒤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사실 부시 대통령은 유럽보다 몇 개월 앞선 2003년 1월 연두 국정연설에서 미국이 수소경제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이미 천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수소에 대한 접근법은 유럽과 차이가 크다. 유럽이 환경친화적인 ‘푸른 수소’의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백악관은 환경에 유해한 ‘검은 수소’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수소는 천연가스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에서 뽑아낼 수 있으나 인체에 해로운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원자력에서 추출할 수도 있지만 위험천만한 핵폐기물이 잔존한다. ‘검은 수소’는 바로 이런 유해물질을 남긴다. 태양력, 풍력, 수력, 지열 같은 재생가능한 에너지원을 통해 얻는 것은 ‘푸른 수소’에 해당한다. 부시 행정부가 비판받는 것은 수소 에너지를 기존 에너지 업계의 이익 보호를 위해 ‘트로이 목마’로 악용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의혹 탓이다.

석유 위주의 화석연료 시스템을 버리고 수소혁명이 필요하다고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학자는 ‘노동의 종말’의 저자 제레미 리프킨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김미선 박사 같은 이는 지구를 살리는 수소 에너지가 강대국 서열까지 바꿀 것이라고 역설한다.

문제는 상용화 속도다. 세계 유명 자동차회사들이 수소차 개발에 박차를 가해 2010년대 중반쯤이면 상용화가 가능하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긴 하다. 서울대 물리학부 임지순 교수팀이 수소 자동차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물질구조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얼마나 앞당길진 모르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석유값 걱정이 태산같은 한국엔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수소 에너지가 ‘석유의 정치학’에 조종을 울려 국제평화지수가 조금이라도 높아진다면 오죽 좋겠는가.

〈김학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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