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餘滴)

[여적] 10원짜리 동전

입력 : 2006-08-15 18:23:33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이 조폐국장으로 일한 것은 일견 부조화다. 천재 물리학자와 돈을 찍어내는 총책이 어울리지 않아서다. 당시 영국 왕립 조폐국은 게으름과 도박의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시중에는 위조 화폐가 부지기수로 나돌았다. 총체적 개혁이 절실했다.

54살이던 1696년 우울증을 앓고 있던 뉴턴은 한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조폐국 개혁의 기수가 됐다. 그는 맨 처음 조폐국의 감사관으로 취직했다. 괴팍한 성격을 지닌 그였지만 일을 깔끔하게 매조졌다. 자연히 명성이 높아져 3년 뒤 조폐국장까지 승진한다. 화폐 개혁도 성공했다. 뉴턴이 화폐 위조범들을 잡아 사형에 처하는 것을 즐겼다는 소문까지 전해 내려온다. 위조하기 어려운 합금 동전을 만들어낸 것도 뉴턴의 착상에서 비롯됐다. 위조방지 방안의 하나로 동전 테두리에 톱니모양을 새긴 고안도 그가 원조다.

동전 제조원가가 동전의 표기금액보다 비싼 것은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10원짜리 동전 제작비용이 40원이나 드는 게 좋은 예다. 그러다 보니 아예 동전을 만들지 않는 나라도 생겨난다. 저개발국가 라오스가 대표적인 나라다. 현대 중국만해도 불과 10여년전까지 지폐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선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8년이 동전을 가장 적게 만든 해의 하나로 손꼽힌다. 엄청난 충격 속에서 한 푼을 아쉬워하던 국민들은 집안의 동전을 샅샅이 찾아내 썼기 때문이다. 돼지저금통을 깬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은행은 새 동전을 만들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500원짜리 동전만 보면 시중 통용화로는 단 한 개도 만들지 않았다. 해외 증정용으로 8,000개만 발행했다.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은 이제 품귀현상을 보여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올 연말에 10원짜리 새 동전을 발행한다는 보도가 있은 뒤 희소성이 높은 연도의 10원짜리 동전 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거들떠 보지도 않던 애물단지가 애물(愛物)이 되는 날도 있는 걸 보면 세상은 머물러 있지 않는 모양이다.

〈김학순 논설실장〉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 첫 인상의 허실  (0) 2006.09.10
[여적] ‘기회의 언어’  (0) 2006.08.27
[여적] 수소 자동차  (1) 2006.08.06
[여적] 두바이油  (0) 2006.07.16
[여적] 앨버트로스  (0) 200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