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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모정(母情)

입력 : 2006-10-08 18:08:34

펭귄은 모성(母性)보다 부성(父性)이 앞서는 동물로 꼽힌다. 드물게 보이는 현상이다. 남극의 황제 펭귄은 100㎞나 떨어진 오지로 걸어가서 40일 동안 암컷을 기다려 짝을 짓는다. 암컷이 알을 낳은 뒤 수컷은 2개월 이상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알을 품는다. 새끼가 부화할 때쯤 암컷이 찾아와 지키기 시작한다. 먹이를 날라다 기르는 것은 수컷과 암컷이 번갈아 한다.

부성이 더 강하다는 점에서는 토종물고기 버들치도 흡사하다. 수놈 버들치는 알이 부화할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바위 입구를 지킨다. 물속 바위 표면에 달라붙은 알을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산소를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다. 수놈 버들치는 그동안 부지런히 지느러미 질을 하다가 기진맥진해서 끝내 죽고만다.

이와는 달리 대부분의 젖먹이 동물과 사람의 경우 모성애가 더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찍이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부정보다 모정이 더 깊은 까닭을 설파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을 때 고통을 겪어 절대적으로 자기 것이라는 마음이 아버지보다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부정(父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크냐를 따지는 저울질은 부질없는 지도 모른다. 부정은 드러나지 않을 뿐 모정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반론도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정이 지고(至高)하고 애정의 극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징검다리 추석 연휴 때 아들이 타고 있던 승용차가 언덕에서 밀려 내려오자 온 몸으로 차를 막아 자식을 구하고 자신은 바퀴에 깔려 숨진 40대 어머니의 사연이 세상을 적셨다. 같은 날 아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은 20대 어머니의 소식도 눈물 없이 읽어내리기 어려웠다. 한결같이 남보다 힘들고 지친 삶을 살아가던 어머니들이어서 가슴이 더욱 미어지는 모정을 절감하게 된다.

천칭(天秤)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놓고 다른 한쪽에 어머니를 실어놓는다면 세계 쪽이 훨씬 가벼울 것이라고 한 말이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 모정이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다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만드셨다’는 유대 격언도 그래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김학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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