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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고별사

입력 : 2006-11-10 18:15:59

미국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팬들에게 이색적으로 고별사를 남겼다. 조던은 유력 신문에 전면 광고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15년 간의 프로농구(NBA) 생활을 마흔 살로 마감한 그가 고별사에서도 스타 선수다운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다. 그것도 ‘사랑하는 농구에게’라는 편지 형식을 빌려 발상의 파격성을 과시했다.

“우리집 주차장 뒤편에서 부모님의 소개로 당신을 처음 만난 지 벌써 28년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나의 인생이자 열정,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중략) 나의 NBA 인생은 분명히 끝났지만 우리의 관계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들의 영웅이자 세계평화의 화신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고별연설은 청중들의 미동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였다. “조국과 동포를 위해 소명을 다한 지금 저는 떳떳한 마음으로 떠나갑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민족평의회(ANC)에 대한 지지와 남아공의 단결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이처럼 영웅적인 인물들의 고별사는 처연하기보다 감동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고별사는 눈물과 회한을 동반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저는 죄인입니다. 속죄하는 마음에서 저의 모든 것을 내놓고 갑니다.” 민족사관고를 세운 파스퇴르유업 최명재 전 사장이 외환위기 직후 회사가 어려워지자 지갑 속의 현금을 포함한 전재산을 내놓으며 남긴 고별사다.

“판사에게는 칼도 없고 지갑도 없습니다. 단지 공정한 판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판사는 칼을 가진 사람이나 지갑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삼승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이 1999년 이종기 변호사 수임비리 사건에 연루돼 사표를 제출하면서 쓴 인상적인 서한도 뒤늦은 후회를 완곡어법으로 담았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어제 이임식 직전 국회에서 마지막 연설을 하면서 촌철살인의 고별사로 눈길을 끌었다. “우리 국민들이 ‘가슴은 한국에, 시야는 세계에 두고’ 행동할 때 저의 사무총장 진출은 최대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고별사가 때론 한편의 시처럼 다가온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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