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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영어 실력

입력 : 2006-11-17 18:18:56

사춘기를 지나 외국어를 배우면 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실증된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고 보면 영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는 특이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원어민이 아니면서도 찰스 디킨스 이래 가장 뛰어난 영국작가라는 명성을 얻게 된 역정은 경탄할 만하다. 그것도 사춘기를 훨씬 넘긴 스물한 살에야 영어를 접한 그였기 때문이다.

폴란드 태생인 콘래드는 양친이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17살때 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4년 동안 견습 선원으로 전전한다. 정식 선원으로 일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갈 당시 그가 알고 있던 영어 단어는 6개가 고작이었다. 그 때 처음 들은 영어는 선원과 어부들의 말이었고, 눈으로 처음 읽은 영어는 신문을 통해서였다. 평생 동안 문법 책을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그는 피나는 노력 끝에 2년 후 항해사 시험에 합격할 만큼 영어에 능숙해졌다. 2시간이나 걸리는 구두시험까지 통과한 것을 보면 말도 꽤 잘하게 됐던 것 같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11년 만에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돌입할 정도로 그의 열정은 남달랐다. 글이 찜찜하면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몇 시간이고 끙끙댔다. 그는 영어를 ‘배운 게 아니라 체득했다’고 털어놨다.

중국 출신 미국 소설가이자 보스턴대 영문학과 교수인 하진(哈金) 역시 콘래드와 견주어 손색이 없다. 스무 살에 영어를 처음 접한 것부터 닮은 꼴이다. 인민해방군으로 복무한 뒤 철도회사에서 일하면서 영어를 독학하기 시작한 환경도 콘래드와 흡사하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인 펜포크너상을 두 번이나 받은 것만 봐도 짐작할 만하다. 콘래드와 하진은 손꼽히는 학습 모델임에 분명하다.

엊그제 연간 15조원을 영어 사교육에 쏟아붓는 한국인의 토플성적이 세계 93위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나와 ‘고비용 저효율’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학습방법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습 방법 못지않게 열정과 집념도 긴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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