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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하버드 교양필수

입력 : 2007-02-09 18:07:43

‘하버드대 도서관의 새벽 4시-그들만의 철학 30가지’라는 게 있다. 새벽 4시가 되었는데도 빈 자리가 거의 없는 도서관 열람실 사진과 함께 학생들에게 교훈적이면서도 풍자적인 생각 서른 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그 가운데 몇 가지는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전부도 아닌 공부 하나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눈이 감기는가? 그러면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 마지막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글귀가 장식한다.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마누라(남편) 얼굴이 바뀐다.’

이같은 ‘하버드대 공부벌레들’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남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늘도 드리워져 있게 마련이다. 학생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나치게 자기 문제에만 매달린다는 점을 꼽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학생들보다 언제나 주목을 받으며 자란 탓이 크다고 한다. 여기에다 대학 당국과 교수들이 워낙 공부 분량을 많이 떠안기는 바람에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적은 것도 또다른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들 공부벌레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조짐이다. 대학당국이 새로운 교과과정 개편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사회와 가치를 다루는 교양필수과목의 채택이다. 미국 중심의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도록 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었음은 물론이다. ‘세계의 사회’ ‘세계 속의 미국’ ‘문화와 신앙’ 같은 과목이 다른 나라와 세계에 대한 이해 능력을 각별히 높이려는 것들이다.

다양성이야말로 이민자들로 이뤄진 미국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임에도 하버드대가 이제껏 이를 소홀히 해왔다는 점이 도리어 의아할 정도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여권을 가진 시민이 가장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다 세계 지리와 외국어에도 가장 무지하다는 오명을 달고 다닌다. 하버드대의 새로운 바람이 자기들만 아는 오만한 나라로 낙인찍힌 미국에 작은 변화의 계기라도 될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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