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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한족(漢族)

입력 : 2007-02-16 16:47:57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옹정제(雍正帝)는 한족(漢族)에 대한 사상탄압을 가혹하게 한 것으로 악명 높다. 그는 “한족이란 본래 여러 오랑캐 민족이 뒤섞여 형성된 것인데 어찌 저희들만 문명이고 남은 오랑캐라 하는가”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옹정제는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에서도 중화사상에 기반한 화이론(華夷論)을 반박했다. 중화와 오랑캐는 상대적인 개념이며 만주족도 중국 황제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중국에 혈연적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렇듯 중국에서 한족은 몽골족이 통치한 원나라 시절을 비롯해 이민족의 지배를 받는 통한의 역사를 감수해야 했다. 나관중(羅貫中)이 쓴 역사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한족의 한(恨)을 담아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三國志)’를 바탕 삼았지만 한(漢)나라의 후손인 유비의 적통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나관중이 살았던 시대가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건국 시기임을 감안하면 몽골족에 당한 한족의 치욕을 비통해 하면서 소설을 썼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도 큰 무리가 아니다. 원나라 때까지 중국 역사서의 정통은 조조(曹操)의 위나라였다.

중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한족의 탄생은 한 제국이 건설되는 것이 직접적인 계기다. 하지만 현재 중국인의 20~25%가 말레이계통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족은 인종적인 개념이 아니라 한어(漢語)를 모국어로 하는 민족으로 귀결된다.

중국은 여전히 공식 통계로는 총 인구의 92% 안팎이 한족이며, 나머지는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최근 자국 학자의 연구결과 순수한 한족은 유전자(DNA) 검사에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끈다. 한족이 문화적 개념에 불과하다는 통설이 학술연구로 입증된 것이다. 동북공정을 비롯해 소수민족을 포용하려는 중국 정부의 정책적 의도가 한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또 다른 제국주의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이런 연구결과부터 실질적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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