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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금지된 사랑

입력 : 2007-03-09 17:58:23

미국 소설가 로널드 토비아스는 ‘금지된 사랑’의 플롯을 여섯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우선 금지된 사랑은 사회 관습에 어긋나 연인들에게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둘째, 연인들은 사회 관습을 무시하고 열정만 좇아간다. 대개 비극적 결과가 뒤따른다. 셋째, 간통은 가장 흔한 금지된 사랑이다. 간통한 사람은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프로타고니스트(주인공)이거나 안타고니스트(주인공의 경쟁자)가 된다. 배반당한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첫번째 극적 단계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고 사회적 범위 안에서 둘의 위치를 알려준다. 그들이 위반한 금기는 무엇인가? 그들과 주변 인물들은 이를 어떻게 다루는가? 두번째 극적 단계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관계의 핵심에 도달하게 만든다. 연인들은 이상적인 관계를 시작하지만 사회적·심리적 압박을 받아 둘의 관계는 해체될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맞는다. 세번째 극적 단계는 연인들이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고 도덕적 문제를 해결할 단계에 다다른다. 연인들은 흔히 죽음, 압력, 추방 등에 의해 헤어진다.

현실 세계에서도 ‘금지된 사랑’은 이와 흡사한 플롯을 보이기 십상이다. 조선 25대 왕인 철종과 양순이라는 천민 처녀의 사랑은 전형(典型)의 하나다. 시골도령으로 자라다가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철종은 강화에서 살 때 양순과 혼약을 맺은 사이였다. 하지만 천민은 궁녀조차 될 수 없는 엄격한 규범 때문에 양순을 궁궐로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양순을 잊지 못한 철종은 상사병을 앓는다. 그러자 왕가의 사람들은 양순을 은밀하게 죽여버린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철종은 비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독일에서는 친남매 간에 결혼한 부부가 사회관습과 법의 장벽에 도전하고 나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금지된 사랑’의 주인공들이 형법의 근친상간 금지조항을 폐기해 달라는 소송을 낸 뒤 찬반 논쟁이 확산되는 추세라고 한다. 프랑스에선 이미 없어졌다지만 도덕적인 문제에다 유전적 요소까지 겹친 뜨거운 감자를 놓고 어떤 결론에 이를 것인지 궁금하다. “이 세상에 하지 말아야 할 사랑은 없다. 다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만 있을 뿐!”이라고 읊은 이정하의 시구가 해답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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