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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따라하기

입력 : 2007-03-23 18:01:17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무척 좋아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유대인인 프로이트는 나치의 모진 박해를 받아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를 포함한 수많은 독일인들이 히틀러에게 동조해 프로이트와 같은 유대인 박해와 배척운동에 앞장섰다. 처음엔 히틀러의 생각에 동조할 의사가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 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동조행동’의 하나다. 남들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이 불안해 본의 아니게 상대방의 생각에 동화시키는 심리가 그것이다. 동조심리 연구의 권위자인 클러치 필드라는 동조심을 일으키기 쉬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성향을 분석했다.

동조심을 일으키기 쉬운 사람은 우선 복종적이고 유순하다. 기호의 범위가 좁고 욕구를 지나치게 억제하는 경향도 있다. 우유부단한 데다 긴장하면 어쩔 줄 모른다. 게다가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겨 암시의 덫에 걸리기 쉽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평판이나 평가에 민감하다.

사실 동조는 사회성의 기초를 구성하는 본능에 속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따라하기’에 익숙한 셈이다. 개와 주인이 서로 닮아가는 것도 일종의 동조행동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엔 개가 주인을 닮아 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인도 개를 닮는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 닮아가는 ‘싱크로니 경향’도 동조행동의 한 형태다. 부부가 닮아가고, 친구끼리 어투가 비슷해지며, 자매끼리 이상형이 흡사해지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관리들이 최근 대통령의 발언이나 청와대 홈페이지의 어투를 흉내내는 경향도 동조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료들의 청와대 ‘따라하기’는 생존전략 측면에서 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도를 넘으면 눈총을 살 수밖에 없다. 소신과 정책을 하루 아침에 뒤집는 발언이 잦아 정부 불신을 자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조과잉’은 관료체제 안에서 윗사람의 지시나 관례에 따라 소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병리현상을 낳는다. ‘동조과잉’은 목표와 수단의 전도, 선례 답습, 무사안일, 책임회피, 창의력 결여 같은 부작용을 불러오기 쉬워 심각성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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