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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행복학 박사

입력 : 2007-03-16 18:06:17

스위스에서 어떤 노인이 자신의 여든 살 생애를 세부적으로 나눠 계산해 보았다고 한다. 결과는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식사 시간 6년, 혼자 공상하며 낭비한 시간 5년, 담배 피우는 데 1년, 세수하는 데 228일, 아이들과 노는 데 26일, 넥타이 매는 데 18일. 여기에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다린 시간 5년’이 더해진 게 이채롭다. 막상 중요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46시간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이처럼 짧은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도처를 헤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돈을 벌면 파랑새를 찾을 수 있을까. 권력을 잡거나 지식을 얻으면 될까.

인간의 이런 노력은 추상적인 ‘행복학’을 어느덧 입증이 가능한 과학의 단계로 끌어올리기에 이르렀다. 행복학이 실질적으로 학문적 탐구 대상이 된 지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마틴 셀리그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사실상의 행복학으로 ‘긍정심리학’이란 용어를 처음 쓴 게 1998년이었다. 셀리그먼은 행복의 3대 조건으로 즐거움, 몰입, 삶의 의미를 꼽는다.

이제 과학자들은 행복이 바이올린 연주나 자전거 타기처럼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는 연구 결과를 쏟아내고 있다. 실증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행복의 요인 가운데 50%는 유전자와 교육이 좌우한다. 소득과 환경 등 자신이 처한 상황이 미치는 영향은 10%에 그친다. 나머지 40%는 대인관계, 우정, 일, 공동체 활동 등이 차지한다. 이는 행복의 40%가 학습과 의지에 따라 증진될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행복의 공식 찾기는 단순히 심리학 차원이 아닌 의학, 경제학, 철학, 뇌과학, 사회학, 신학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대통합인 ‘통섭(統攝)’의 경지로 치닫고 있다.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은 세계 최초로 올 가을학기부터 ‘행복학’ 박사과정을 개설한다고 발표했다. ‘긍정심리학’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행복이란 파랑새를 찾아 전세계를 헤매던 치르치르와 미치르 자매가 결국 자기 집 처마 밑에서 발견했듯이 행복학 박사들이 가까운 곳에서 찾아줄 수 있을까.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행복이 그리 호락호락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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