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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역발상 시계

입력 : 2007-03-30 18:23:31

“가장 낭비하는 시간은 방황하는 시간이고, 가장 교만한 시간은 남을 깔보는 시간이다. 가장 자유로운 시간은 규칙적인 시간이며, 가장 통쾌한 시간은 승리하는 시간이다. 가장 지루한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이며, 가장 서운한 시간은 이별하는 시간이다. 가장 겸손한 시간은 자기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시간이고, 가장 비굴한 시간은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시간이다. 가장 불쌍한 시간은 구걸하는 시간이며, 가장 가치 있는 시간은 최선을 다한 시간이다. 가장 현명한 시간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시간이고, 가장 분한 시간은 모욕을 당한 시간이다. 가장 뿌듯한 시간은 성공한 시간이며, 가장 달콤한 시간은 일한 뒤의 휴식 시간이다. 가장 즐거운 시간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다.”

한 인터넷 카페에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자 미상의 잔잔한 글이다. 시간은 이 글처럼 그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느낌은 심리적 시간의 화살에 비유된다. 현대과학은 시간이 흘러간다는 느낌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아직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반대로 먼 미래까지 먼저 가 보고 싶은 유혹도 떨쳐내지 못한다.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여행’이 그것이다.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와 소설이 흥행에 성공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간여행이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대세인 듯하나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설 시리즈에 나타나는 시간여행처럼 사람의 ‘정신’만은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충북 증평군청의 한 공무원이 고안한 거꾸로 가는 ‘역발상 시계’(경향신문 3월30일자 11면 보도)는 마치 ‘과거로의 시간여행’ 욕구를 연상하게 한다. 눈에 익숙하지 않아 언뜻 보면 고장난 시계로 취급하기 쉬운 ‘역발상 시계’는 고정관념을 파괴하도록 요구하는 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왼쪽으로 돌아가는 이 시계는 실용성이 떨어져 보이지만 “무조건 오른쪽으로 돌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때 혁신이 가능하다”는 이 공직자의 변(辯)이 더 그럴 듯하게 들린다. ‘새로운 시각이 새로운 시간을 만듭니다’라는 시계 밑의 문구는 그래서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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