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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사과법

입력 : 2007-04-13 17:56:39

사과(謝過)만큼 잘하기 어려운 것도 드물다. 자존심을 꺾고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다. 그래선지 학자들은 사과를 ‘무너져가는 커뮤니케이션을 회복하기 위한 고등기술’이라고 조금 유식하게 일컫는다. 사과는 ‘난 사람’이나 ‘든 사람’보다 ‘된 사람’일수록 잘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진정성이 사과의 요체이기 때문이리라.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고단위 처방인 몸을 던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에선 몸을 던지는 사과로 할복이라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되곤 했다.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사죄하는 것도 몸을 던져 사과하는 범주에 포함된다. 사실 바닥에 엎드려 사과하는 것은 누구나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땅바닥에서 조아리는 모습처럼 효험이 큰 사과방법은 없다고 한다. 그것도 기왕이면 주저말고 이마까지 대야 확실한 효과가 나타난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과할 때는 다섯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첫째, 사과는 되도록 빨리 해야 한다. 때를 놓치면 감정의 골이 깊어질 확률이 높다. 둘째, 솔직해야 한다. 셋째, 진심이 담겨야 한다. 건성으로 사과한다는 인상을 주면 도리어 괘씸죄가 추가된다. 넷째, 다른 속셈을 보여서는 안된다. 사과 직후 다른 일을 해결하려 들면 진심을 오해받는다. 다섯째, 다짐이 따르는 사과를 해야 한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곁들여야 믿음을 준다.

최근 미국에선 의사들이 실수를 했을 때 부담없이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는 ‘사과법(I’m sorry law)’을 속속 만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4년 사이에 이미 27개 주에서 이 법이 제정됐고 9개 주에서는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다.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아 환자들의 분노를 사는 건 어느 나라나 흡사하다. 소송을 염려해 실수를 잡아떼고 보는 게 관례다. 이 때문에 이 법에는 의사의 사과가 법정에서 증거로 악용되지 않도록 면책조항을 덧붙였다.

좀 별난 이름을 지닌 ‘사과법’의 면책 논란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의료사고라면 미국과 별 차이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도 검토해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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