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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神들의 여행’

입력 : 2007-10-19 18:02:51

세상에서 가장 걸리기 쉽고 헤어나기 어려운 증세가 ‘신(神)증후군’이라는 주장은 그럴 듯해 보인다. 신증후군은 “신은 불공평하다”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무모화하려는 현상을 일컫는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신에다 불평을 퍼부어대는 모습은 흔하디 흔한 장면이다.

“작은 집 옆에 대궐 같은 큰 집을 지으면 그동안 사는 데 불편함이 없던 작은 집은 곧 오두막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상대적 박탈감을 ‘이웃효과’에 빗댄 카를 마르크스의 설파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 공격성과 혁명적 분노를 유발한다고 진단한 ‘테드 거’의 이론으로 상승작용할 여지가 많다.

‘신이 내린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에 대한 논란도 뜯어보면 이웃효과에서 출발한다. ‘신의 직장’이 급수마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냉소주의가 극에 달한 조짐이다. ‘신이 부러워하는 직장’ ‘신이 숨겨둔 직장’ ‘신도 모르는 직장’까지 버전이 올라가는 것은 ‘좋은 일터’에 대한 선망과 질시 수준을 넘어선다. 고액 연봉과 신분 보장에다 충분한 휴일까지 거역할 수 없는 매력에 포박당한 ‘신의 직장’은 이제 뭇매를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공기업의 경영진이나 임원은 ‘신’에 비유될 정도로 비아냥거림의 강도가 높아졌다. 해외여행을 하는 경영진이 1등석을 타고 하루 체재비가 55만원에 이르는 것은 물론 일반 국민은 들어보지도 못한 여행준비금까지 180만원에 가깝다면 ‘신’도 부러워할 법하다.

이쯤 되면 ‘신이 내린 직장’은 부풀려졌다는 신중론도 잠재우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다음 정부에서 ‘신의 직장’을 반드시 수술하라는 주문이 홍수처럼 터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게다. 기획예산처가 자진해서 조정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기는 하지만 국민들의 눈높이로 내려와야 할 때다. 동의할 수 없으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

공복의 전범을 보인 주룽지 전 중국 총리의 이런 일화가 문득 그리워진다. ‘오스트레일리아를 국빈 방문한 주룽지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뒤 몇 분이 지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걱정이 돼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공학자 출신인 총리는 두 개의 버튼으로 물 소비를 줄인 변기를 분해해 바닥에 놓고 어떻게 작동되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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