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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외톨이 증후군

입력 : 2007-04-20 17:59:03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당신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나왔다.” 한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던 일본 소설가 다키모토 다쓰히코가 지난해 난생 처음 해외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 독자가 재치있게 던진 첫 마디다. 다키모토는 히키코모리를 다룬 체험적 소설 ‘NHK에 어서 오세요’의 팬 사인회를 갖는 자리에서 동병상련의 독자를 만나 이런 말을 듣고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 사이토 다마키는 일본 인구의 1%인 130만명이 다키모토 작가가 겪은 히키코모리라고 추산한다.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숫자를 부풀렸다는 설도 없지 않으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만은 분명하다. 히키코모리는 일본에서 6개월 이상 집에 틀어박혀 외부와 접촉을 끊은 사람을 지칭하는 1970년대 신조어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 ‘오타쿠’를 꼽을 수 있다. 특정 문화 분야나 취미에 집착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오타쿠가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에 몰입하면서 고립된 것이라면, 히키코모리는 세상과 담을 쌓고 병적으로 은둔하는 외톨이다. 오타쿠는 서양의 ‘코쿤’과 비교된다. 누에고치에 빗댄 코쿤족은 취미생활에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고 나홀로 즐기는 사람이다.

코쿤족이 의도적으로 혼자만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데 비해 오타쿠들은 취미생활만 같다면 덜 배타적인 게 다르다. 코쿤은 그러나 오타쿠처럼 취미생활 분야에 광적으로 빠지지는 않으며, 히키코모리처럼 극도의 사회성 결여를 수반하지도 않는다. 코쿤은 취미생활 이외의 업무에 관해서는 정상적인 사회성을 유지한다. 은둔형 외톨이인 히키코모리는 오타쿠나 코쿤과 달리 엄청난 사회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 조승희씨가 외톨이 증후군으로 상처를 입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톨이 자녀를 가진 한국 학부모들도 새삼 걱정이 태산 같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고교생의 2.3%인 4만여명이 은둔형 부적응 위험군에 속한다는 청소년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온 적이 있어 국가적 대책이 화급한 실정이다. 청년실업률의 증가가 외톨이 증후군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고 보면 강 건너 불은 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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