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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호돌이의 출가

입력 : 2007-11-09 18:06:41

호랑이만큼 식성이 까다로운 동물도 드물다. 야생 호랑이는 대개 스스로 잡은 야생동물의 신선한 고기만 먹는다. 썩은 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 개가 풀을 뜯지 않듯이 호랑이는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가거나 몸을 숨겼다가 덤벼들어 먹이를 잡지만, 도망가는 동물을 쫓아가서 잡아 먹는 법도 거의 없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호랑이는 한국인들의 성격이나 행동 양태와 많이 닮았다는 견해도 그럴 듯하다. 무리지어 다니는 사자와는 달리 호랑이는 언제나 혼자서만 다니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암컷과 수컷도 홀로 지내다가 짝짓기할 때만 냄새를 맡고 합방한다. 호랑이를 한국의 상징처럼 여기는 데는 나라 모양이 닮은 까닭도 크다. 한반도 지세를 백두산 호랑이에 처음 비유한 기록은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가 쓴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상들은 한민족의 위대한 기상을 조선 호랑이에 견주곤 했다. 축구대표팀의 유니폼에 호랑이 무늬를 넣은 것도 그런 상징성을 반영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별명이 백두산 호랑이일 정도다. 실패했지만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백두산 호랑이를 복제해 민족혼을 떨치겠다”고 호언장담한 것 역시 이같은 한국인의 정서를 의식한 것이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백두산 호랑이 암컷 네 마리가 일본 후지 사파리공원으로 시집간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한국 호랑이 ‘호돌이’의 후손들이다. 한국 호랑이가 외국 동물원으로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해방 직후 이승만 대통령과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일본 총리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백두산 호랑이가 화젯거리였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감회가 남다르다. 어렵사리 성사된 회동에서 요시다 총리가 “한국에는 아직도 호랑이가 많다면서요. 옛날부터 백두산 호랑이가 유명하지 않습니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대통령은 “당신네 일본 사람들이 다 잡아 가는 바람에 호랑이 씨가 말랐소”라고 퉁명스럽게 응대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한국을 상징하는 호돌이들이 ‘가깝고도 먼’ 한·일관계를 한결 돈독하게 만드는 가교가 된다면 출가(出嫁)의 뜻은 더욱 깊고 곡진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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