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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聖女’마더 테레사, 당신이 잡은 손은 惡입니다

입력 : 2008-01-18 17:25:50

▲자비를 팔다…크리스토퍼 히친스/모멘토
▲신은 위대하지 않다…크리스토퍼 히친스/알마

크리스토퍼 히친스만큼 논쟁적인 지식인도 흔치 않다. 그렇다고 기품 없는 논객은 아니다. 지식시장에서 히친스의 주가가 여전히 높게 형성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그는 2005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공동으로 실시한 ‘100대 지식인’ 독자 투표에서 5위에 올랐다. 노엄 촘스키, 움베르토 에코, 리처드 도킨스, 바츨라프 하벨만이 그 앞에 놓인다.

진보적인 정치학자이자 언론인인 그가 펴내는 책과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마다 논쟁과 화제를 몰고 다닌다. 그가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촘스키와 벌인 논쟁은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다. 그의 저작 가운데서도 가장 논쟁적인 두 권의 책이 같은 시기에 각기 다른 국내 출판사에서 선보였다. ‘자비를 팔다’(원제 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와 ‘신은 위대하지 않다’(원제 God is Not Great)는 종교적 우상에 도전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자비를 팔다’(김정환 옮김·1만원)는 신성불가침 같은 ‘빈자(貧者)들의 천사’ 테레사 수녀를 사실상 발가벗기는 비판서다. 지옥이 실제로 있다면 히친스는 이 책 때문에 거기에 가게 될 것이라는 풍자적 논평이 있을 정도다. 이 책은 1995년 첫 출간 당시 내용 못잖게 제목부터 논란을 빚었다. 원제 ‘The Missionary Position’은 단어대로만 해석하면 ‘선교의 입장’이지만, 성행위의 ‘정상 체위’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성녀’(聖女)라는 마더 테레사의 명성으로 행동과 말을 판단하지 않고 그의 말과 행동으로 명성을 판단하겠다고 먼저 선언한다.

1980년대말 미국을 뒤흔든 저축대부조합 스캔들을 일으킨 찰스 키팅과 악수하고 있는 테레사 수녀. 왼쪽 사진은 아이티의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의 부인 미셸 뒤발리에와 함께.

히친스가 꼼꼼하게 취재해 밝혀내는 테레사 수녀의 처신은 하나같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책에 기록된 대표적인 사례 하나. 미국 역사상 최대 사기 사건 가운데 하나인 저축대부조합 스캔들을 일으킨 찰스 키팅이 10년형을 선고받는 재판이 시작되자, 125만달러라는 거금을 기부받은 적이 있는 테레사 수녀는 판사에게 관용을 간청하는 탄원서를 낸다. 그러자 담당 검사는 수녀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키팅이 기부한 돈의 출처를 알려드리오며 정당한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임을 권해드립니다. 연락을 주시면 당신이 갖고 계신 돈의 정당한 주인과 곧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수녀는 끝내 답장을 쓰지 않았다.

아이티의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의 부인 미셸에 대한 칭송과 포옹하는 사진은 양식 있는 이들의 눈을 의심케 한다.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왕과 대통령들을 만났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우두머리와 이토록 친근한 사례는 처음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배움의 경험이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일화는 수없이 많다.

마더 테레사가 운영한 ‘사랑의 선교회’가 자신들의 재정적 목적을 위해 막상 돌봐야 할 병자와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외면한 사례가 숱하다고 히친스는 조목조목 고발한다. 수녀 자신은 말년에 병환과 싸울 때 서양에서 가장 비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김승욱 옮김·2만5000원)는 종교의 역사, 경전의 원전, 문헌학, 해석학 등을 바탕 삼아 신과 종교 내부의 모순·해악을 설득력있게 파헤친 역작이다. 종교는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든 것이어서 자기네 예언자나 구세주, 구루가 실제로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관해 일치된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근거를 들이대며 신랄하게 꼬집는다. 이에 앞서 출간된 샘 해리스의 ‘종교의 종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대니얼 데넷의 ‘마법 깨기’ 등이 주로 신경과학·분자생물학·동물행동학·집단유전학 등 자연과학을 토대로 바깥에서부터 비판해 들어가는 방법론을 보여준 것과 비교된다.

지은이는 한때 성공회 신자였고, 감리교 계열의 학교에 다녔으며, 결혼 때문에 그리스 정교로 개종했고, 재혼할 때 유대교 랍비의 손을 빌리는 등 다양한 종교적 체험을 쌓았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를 이해하기 위해 테헤란, 다마스쿠스, 예루살렘, 도하, 이스탄불, 워싱턴 D.C. 등의 회교사원,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보스니아 등의 수많은 신도 모임·금요기도회에 참석하면서 공력을 쌓는 집념을 보여준다. 평생 동안 이 책을 집필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할 만큼 히친스로서는 야심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언론인으로서의 글솜씨가 돋보이는 데다 영화의 명장면, 문학 속의 예화 등 풍성한 역사적 사례들이 소구력을 더해 준다. 수많은 증거를 통해 종교인들을 비판하는 강점을 보이는 반면 종교적 다양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다소 부족하다는 약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에는 박학을 유감없이 과시하지만 달라이 라마, 라즈니쉬의 행적을 비판할 때는 선불교 일반에 관한 지식의 불균형을 감추지 못한다. 책은 신에 엮인 고리를 끊지 않는 한 인간에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다. 두 권의 책 출간과 맞물려 얼마전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했던 고해 편지가 공개된 적이 있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