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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북리뷰

[책과 삶]‘위선의 손’…증오를 ‘증오’하다

입력 : 2008-02-01 17:20:24수정 : 2008-02-01 17:20:29

ㆍKKK단·흑인린치·고문·강간·아동학대
ㆍ지구촌의 끔찍한 잔혹문화와 역사 헤집기

▲거짓된 진실…데릭젠슨|아고라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증오의 종류는 사랑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해진다고 한다.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증오가 있는가 하면, 권력이 없어서 생긴 증오도 있다. 복수심 때문에 생긴 증오와 부러움이 변한 증오가 교직된다. 공포 때문에 증오가 발생하는 한편, 그저 경멸 때문에 증오가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증오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반유대주의, 동성애자 혐오증 같은 낱말들만으로는 증오의 다양성을 담아내지 못한다. 게다가 증오는 편견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암울하다. 증오의 개념도 사실 모호하다. 매우 구체적인 대상이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의미하는지 편견, 완고함, 선입견, 분노, 타인에 대한 혐오감 등을 모두 합한 개념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도 많다.

미국의 사회변혁운동가인 데릭 젠슨은 사회 도처에 널려있을 뿐만 아니라 숨어 있는 ‘증오의 문화’에 도전한다. 젠슨은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 반다나 시바, 아룬다티 로이 등과 같은 진보좌파 지식인 가운데서도 급진적인 아나키스트이기도 하다. 그가 쓴 ‘거짓된 진실(원제 The Culture of Make Believe)’은 증오를 양산하는 지구촌, 그 가운데서도 미국의 끔찍한 증오 문화와 역사를 헤집는다.

정상적인 심장으로 참아내기 힘든 예화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KKK단의 유색인 사냥. 경찰의 지시대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죽임을 당한 수많은 흑인들. 돼지나 다름없는 삶을 영위하는 제3세계의 매춘아동.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강간의 대상이 되는 여성 인권. 하나님과 성경의 이름으로 노예를 정당화한 거룩한 미국 백인 목사들. 미국의 모든 카운티에 빠짐없이 뿌려졌으나 지금은 잊혀진 원주민의 피. 1회용 휴지 같았던 수백만 중국 이민자들. 눈뜨고 볼 수 없는 인권사각지대인 교도소 풍경. 속임수에 당한 홀로코스트의 악몽. 1페니짜리 수분보충제가 없어 죽어간 수십만의 이라크 어린이들.

2006년 5월 수단 다르푸르의 인종학살 사태로 집을 잃은 여인이 난민촌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앉아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의 시선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나치는 인간을 죽였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 전체를 죽이고 있다고 질타한다.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100만명의 사람을 죽이는 것이 가능한 현대 문명의 이기를 지금까지의 모든 증오범죄보다 한층 무서운 경종의 대상으로 여긴다.

젠슨에게 모든 악은 생산과 경제로 귀결된다. 모든 민족국가,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할 것 없이 공히 중요시하는 생산과 경제가 현대적인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생산이 공동체, 생태계의 건강, 풍요, 행복, 심지어 생명보다 중요한 아이러니에 숨 막히는 듯한 표정이다.

저자는 생산을 마치 불교의 ‘아귀’가 현세화한 것이라고 본다. 본보기로 1984년 인도 보팔에서 1만명이 숨지고 12만명이 다친 사고를 낸 적이 있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 유니언 카바이드의 수많은 악행 사례들을 섬뜩하게 열거하고 있다. 생산이란 이름으로 ‘제노사이드’를 저지른 회사가 그뿐 아님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교도소 글쓰기 선생으로 체험한 생생한 증언은 그의 말대로 눈물을 펜 삼아 쓴 흔적이 질척하게 묻어난다.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충격적이고 격정적인 독설로, 어떤 때는 점잖은 사람들 사이에 쓰기 어려운 단어들을 거침없이 동원해 증오를 ‘증오’한다. 그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님을 닮은 듯하다.

젠슨이 증오를 평가하는 시각으로는 한나 아렌트의 출세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연상해도 좋겠다. 아렌트가 인식한 ‘악의 평범성’이 여기에도 관류한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게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분석한 아렌트의 견해가 이 책에서도 읽힌다. 평범한, 그러나 너무나 평범해서 지독한 악이다.

너무 오래돼 증오로 여겨지지 않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증오를 고발하면서 지은이는 “내가 백인으로 태어난 것이 무척 다행이고 남자로 태어난 것은 더욱 다행스럽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러면서 ‘진실은 침묵으로 대체되고 침묵은 거짓말이다’라는 예프게니 예프첸코의 명언 한 마디로 경고장을 대신한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이 책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은 하나의 무기다. 잔학 행위에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의 손에 쥐어진 총이고, 그 총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는 매뉴얼이다. 이 책은 우리의 인식을 묶어두고 지금 같은 세상에 우리를 묶어두는 밧줄을 자르는 칼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성냥이다.”

악을 다룬 책이지만 선하다. 지은이는 인간은 물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하다 못해 곰팡이 같은 미물에도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다른 사람의 안락과 고상한 생활을 위해 평생 노예로 살아야 했던 모든 인간들, 그걸 위해 희생된 모든 존재들에게 ‘잊지 않음’으로 빚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마음씀씀이에 숙연해진다. ‘살이 가공되어 이 책으로 만들어진 나무들에도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체온이 다르게 느껴진다.

지은이는 증오가 멈추기를 원한다면 그 틀을 만드는 조건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틀은 문명이다. 문명을 제거해야 한다니 말이나 될 법한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건 어려운 게 아니라 단순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현정 옮김. 1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