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지고 살아서 돌아온 장수, 전쟁에서 지고 죽어서 돌아온 장수, 전쟁에서 이기고 살아 돌아온 장수, 전쟁에서 이기고 죽어 돌아온 장수. 이 가운데 어떤 사람이 가장 존경을 받을까. 상황에 따라 약간은 다를 수 있겠지만 네 번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인기 드라마 <명가>와 그 주연 배우 차인표의 아이티 지진피해 구호금 1억원 쾌척 등이 상징하듯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덕목은 원래 전쟁에서 비롯됐다. 초기 로마의 귀족들은 솔선해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포에니 전쟁에 참여했으며, 2차 포에니 전쟁 때는 13명의 집정관이 전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마에서는 병역의무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은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었을 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가슴을 저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칼레의 시민’ 이야기도 백년전쟁 당시 처형을 자청하고 나선 최고 부자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의 희생정신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전쟁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쟁이 나면 귀족들은 솔선수범해 최전방에 나가 싸웠으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알토란 같은 재산도 사회에 흔쾌히 내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구체적인 덕목이 명문화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의무의 이행, 어려운 상황에서 보여주는 수범과 희생, 나라와 사회에 대한 봉사, 기부, 사회적 책임의식 등을 두루 꼽을 수 있겠다.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라는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은 1808년 프랑스 정치가이자 작가인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이 로마에 흘러들어간 뒤 생활화한 관념이기도 하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살림출판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와 유럽 각국의 모범 사례, 기부문화 선진국인 미국과 한국의 기부 문화를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는 마당이다. 로마 귀족들의 기부 정치, 영국 왕자들의 참전 수범, 독일의 귀족 출신 전쟁 영웅, 프랑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 미국 사회의 성숙한 기부문화가 심장을 파고든다.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였지만 우리 역사 속에 살아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범례도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널리 알려진 경주 최부자 집안 이야기는 물론 6형제가 모두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이회영 집안,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허위 일가,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상룡 가문 등 3대 항일 명문의 일화는 후대까지 호의호식하며 철면피로 사는 수많은 친일파 가문들과 사뭇 대비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이다. 가진 것 없이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한 ‘김밥 할머니들’의 나눔 정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능가하는 ‘험블레스 오블리주’(어려운 사람이 베푸는 일)라 할 만하다.
기부문화에 초점을 맞춘 데다 문고본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그나마 포괄적으로 다룬 책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이미숙의 <존경받는 부자들>(김영사), 최해진의 <경주 최부자 500년의 신화>(뿌리깊은나무) 같은 책이 깊이를 보완해 줄 수 있을 듯하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표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가 한국사회의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수’는 100점 만점에 26.48점으로 매우 낮았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인, 고위 공무원들이 기부는커녕 병역·납세의무를 가장 잘 지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덕적 해이가 상습화된 이들에겐 ‘노블레스 말라드’(병들고 부패한 지도층)란 딱지가 제격이겠다. |